“검찰권행사 정도 이탈” 중론/정 기자 구속… 검찰내부서도 비판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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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철야조사→전격 구속은 상식밖의 처사/고의성 없어 공소유지에 어려움 지적/외압의한 눈치보기 수사여전 의견도
검찰은 중앙일보 정재헌기자 구속을 둘러싸고 검사들 사이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검찰권 행사』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검사들의 일관된 지적은 「도대체 고소사건을 이렇듯 전격적으로 구속으로 몰고간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명예훼손 사건은 기본적으로 당사자 화해가 기본이다. 중앙일보가 보도가 나간 즉시 과실을 확인하고 2판부터 기사를 삭제하고 다음날 1면에 해명기사와 정중한 사과문을 게재한 것을 보고 그동안 언론은 오보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고치게됐을 정도다. 국방부장관과 화해할 시간도 전혀 주지않고 기자를 구속한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고 말했다.
「과연 이 사건이 구속사안이냐」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검사들은 이견을 제시했다. 모든 사건은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한데 이미 1판에 1백여만부나 찍혀 나간 신문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되며 공인으로 간주되는 기자의 도주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 검사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설혹 화해가 안됐어도 불구속수사를 하는것이 원칙인데도 이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이다.
잠을 안재우고 벌이는 철야수사는 증거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으며 낮에 소환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조사를 벌일 수도 있는데도 편집국장과 사회부장을 철야조사한 것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대검의 한 검사는 『중앙일간지의 편집국장과 사회부장이라면 양식있는 사람들인데 흉악범 다루듯 철야조사를 한 것은 상식밖』이라며 『특히 거짓말인줄 알면서 1면 머리기사를 쓰는 기자는 없다는 점을 감안할때 결국 중앙일보의 기사는 과실이라 할수 있는데 이를 명예훼손으로 구속하면 과연 법정에서 공소유지가 가능할지도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검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은 일반적인 고소사건의 관례와 절차를 무시한 정 기자 전격 구속과 중앙일보 간부들에 대한 철야조사 사태가 왜 빚어졌느냐는 것이다.
검사들은 일부 고위간부들이 『우리의 의사가 아니다』고 말하는데 대해 『그게 과연 문민시대의 검찰권이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검찰권이 엄정한 법논리에 의해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외압이나 눈치에 의해 행사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문민시대와 더불어 검찰은 독재권력의 정당성 수호에 급급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뤄달라는 것이 국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었는데 불행히도 문민정부 출범후에도 검찰이 이같은 국민의 여망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음을 이 사건에서 보여주었다는 지적이다.
동화은행 비자금 조성과 슬롯머신 사건을 대비하면 검찰권의 현주소는 뚜렷해진다.
검찰은 동화은행 안영모은행장으로부터 민자당 이원조·김종인의원과 이용만 전 재무부장관에게 뇌물을 줬다는 진술을 일찌감치 얻어내고도 『먼저 증거를 확보해야한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을 하지 않았다. 결국 이원조의원은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일본으로 달아나 버렸다.
검찰은 그러나 박철언의원의 경우 정덕진씨로부터 박 의원에게 금품을 줬다는 진술을 얻어내자마자 물증이 없으면서도 소환해 구속했다.
검찰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 이중잣대를 갖고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이같은 태도는 슬롯머신업계의 검찰내부 비호세력에 대한 수사에 소극적이다가 여론의 비난과 대통령의 질책에 따라 수사에 나서 이건개 전 고검장을 구속한 사례에서도 분명히 드러났었다.
박태준 전 포철회장의 뇌물수수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은 처음부터 『국세청에서 넘긴 부분만 수사하고 비자금 조성여부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겠다』고 말해 검찰수사가 미리 한계를 긋고 있음을 보여줬다.
문민시대 검찰권이 스스로의 독자적인 법적 판단보다는 정치권의 영향 등 외부적인 요인에 더 신경을 쓰는듯한 모습에 많은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음을 검찰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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