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동굴」현상(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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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럽 동인도 회사들의 동양에 대한 독점무역권이 절정을 이뤘던 1756년 여름 인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캘커타에 있는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문을 들은 벵골지역의 지방관이 병력을 동원해 영국인 요새를 점령했다. 이때 미처 달아나지 못한 영국인 1백46명이 포로로 잡혔다. 점령군은 이들을 겨우 길이 6m·너비 4m 밖에 안되는 좁은 방에 몰아넣고 출입문을 봉쇄해 버렸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난뒤 문을 열어보았더니 대부분 사망하고 겨우 23명만 살아남아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일어난 집단질식사 였다.
이 방의 이름이 「검은 동굴」이었기 때문에 과학사에서는 이산화탄소에 의한 질식사를 「검은 동굴현상」이라 한다. 이 집단질식사는 열사병에도 원인이 있었다. 사람들의 뇌에는 체온조절중추가 있어 몸에서 생기는 열의 일부를 땀으로 증발시켜 체온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검은 동굴 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흘린 땀으로 실내공기의 습기가 포화상태였기 때문에 땀의 증발에 의한 체온조절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사람의 체온이 섭씨 41도를 넘어서면 체온조절중추가 마비돼 결국 죽게 된다.
한정된 공간인 지구의 인구는 증가일로에 있어 25년 후면 현재의 두배가 된다는 추산이다. 화석연료의 사용급증으로 60억t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돼 대기권에 축적되고 있다. 축적된 가스층는 지구의 온난화현상을 일으켜 지구기온을 높이고 있다.
반면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로 대체시키는 삼림은 해마다 한반도 절반만큼씩의 면적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검은 동굴의 파국에 접근하고 있는 지구의 운명을 되돌려 놓기 위한 노력이 범세계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탄소세도 그 방안중의 하나다.
정부의 신환경 5개년 계획에도 탄소세제도의 실시가 포함돼 있다. 화석연료에 세금을 부과해 소비를 줄이고 환경보호 재원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방향은 옳으나 이로 인한 비용 및 물가상승과 경제의 국제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유럽 4개국을 제외하고는 여타 선진국들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좋다는 일이라도 교역경쟁국이나 인접국가들과의 공동보조와 형평이 먼저 신중히 고려돼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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