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앞에 똘똘뭉친 불 민관/박의준 통일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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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집에 참한 색시가 하나 있으니 제발 좀 데려가주요.』
이는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프랑스를 공식 방문했던 한승주 외무부장관이 프랑스 고위관리들로부터 들어야만 했던 곤혹스런 부탁이었다.
이들의 부탁은 정말 프랑스 아가씨를 한국에 데려가라는 것이 아니라 경부고속전철 공사에 프랑스가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여부로 골머리를 앓았던 한 장관은 국가원수들이 주로 이용하는 파리시내 최일류 호텔인 크리옹호텔에서 지내고 이동할때 경호원들이 여러명 따라붙는 등 파격적인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대접이 국력이 높아진 반증이라는 점에서 가슴뿌듯함도 느꼈겠지만 약간은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
프랑스의 경부고속전철에 대한 의욕은 참으로 대단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한 장관을 만나 경부고속전철 참여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고 한­불 외무장관 회담에서 위페 외무부장관도 「테제베」(프랑스의 고속전철) 이야기를 꺼냈다.
위페장관은 「테제베」를 의식한 듯 우리측이 먼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북한 핵문제와 관련,유엔안보리의 제재가 필요하면 프랑스가 적극 돕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는 외무장관 회담후 열린 만찬에서도 이레적으로 『공무원들이 출장갈 때도 테제베를 이용한다. 「테제베문제」는 어느 개인이나 기업인의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 전체가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 장관은 『테제베를 한번 못타보고 가게 돼 유감』이라고 가볍게 넘기면서 프랑스 문화에 대한 예찬론을 폈지만 만찬장에 참석한 많은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문화 얘기만 하지말고 자기들의 첨단기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정들이었다.
게다가 만찬장에서 만난 기업인들도 『경부고속전철 공사자 선정을 언제 하느냐. 올해냐,아니면 내년이냐』고 집요하게 물어왔다.
이쯤되자 한 장관도 숙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프랑스가 경부고속전철 문제가 없었다면 이처럼 대접했을까』고 반문하며 『미테랑 대통령의 방한시기를 잘 잡아야겠다』고 농담을 건넸다.
그러나 한 장관으로서는 통상외교의 중요성을 잘 체험한 방불이었을 것이다.
국익앞에 철저히 똘똘 뭉치는 이들은 보면서 이동통신 선정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을 하던 우리 모습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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