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기대보다 걱정이 큰 남북 정상회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남북 정상회담이 8월 28~30일 평양에서 개최된다고 정부가 어제 발표했다. 그동안 정상회담을 부인해 왔던 정부로서는 결과적으로 거짓말한 게 드러난 셈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한 사회는 물론 한반도 정세 전반에 파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이 아직 요원한 데다, 남측 대통령 선거를 불과 4개월 앞둔 시점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북핵 완전 포기 및 이행 착수’ 등 긍정적 성과가 있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오히려 우리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는 후폭풍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은 남북 간 대결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대보다는 우려가 훨씬 크다. 정상회담 추진 전반에 걸쳐 의혹을 자아내는 대목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회담

 우선 시기 면에서다. 북한은 2000년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약속을 지금까지 어겨 왔다. 수년간에 걸친 DJ와 현 정권의 정상회담 제의도 무시했다. 이랬던 북한이 남쪽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갑자기 정상회담에 응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평양지도부는 공개적으로 수차례에 걸쳐 한나라당 집권을 결사 반대해 왔다. 이러니 이를 어떻게 ‘남북관계 확대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남측 대선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결정적 카드를 쓴 것으로 봐야 한다.

 남측 정부도 오락가락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이후 남북 정상회담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북핵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불과 두 달 전에도 “북핵 문제가 걸려 있는 동안에는 북한이 한국의 대통령을 만나 득 볼 것이 없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정상회담에 대한 근본 입장을 일거에 바꿔 버린 것이다. 이러니 ‘8월 정상회담’은 ‘12월 남쪽 대선’을 의식한 남북 당국의 ‘정략적 합의’라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이 우리 정치 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둔다.

 정상회담 추진 절차와 내용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 우선 정상회담 장소로 다시 평양을 택한 것은 ‘2000년 답방 합의’에 어긋난다. 특히 ‘장군님을 만나 뵈러 남측 대통령이 또 평양에 왔다’는 식으로 북한의 정치적 선전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두 정상이 만나 무엇을 논의하려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남북 실무접촉에서 의제가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래 정상회담이란 실무회담에서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이룬 뒤 열리는 게 상식이다. 회담을 불과 보름 앞두고 이제부터 의제를 논의한다니 이런 식의 회담이 있을 수 있는가. 이 정부 들어 5년이 다 되도록 가만히 있다가 왜 임기 말에 이런 일을 벌이려 하는 것일까. 이러니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우려가 불식되려면 정상회담에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성과가 나와야 한다. 특히 북핵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만약 ‘손에 잡히는 실질적 성과’가 없다면 심각한 안보 위기가 올 수 있다.

북핵 폐기 등 실질적 성과 있어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해 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북관계를 한 차원 진전시킨다’는 미망에 빠져 우리 헌법과 영토를 손상시키는 어떤 논의에 응해선 결코 안 된다. 서해북방한계선 재설정이 한 예다. 또 정상회담 결과를 비롯한 추진 과정 전반도 국회에 보고해 국민적 동의도 얻어나가야 한다.

 국민들도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국민들은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이라는 희망에 가득 찼었다. 그러나 경협 측면에서의 일부 진전을 제외하곤 남북 화해에 근본적 변화는 없었다. 이런 측면에 유념, 정상회담의 결과를 비롯한 전반을 냉정하게 지켜봐야 한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이 대선이라는 국내 정치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