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에 ‘애국심 마케팅’이 꽤 잘 통하는 건 이렇게 국산품 애용이 체질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주권을 잃은 97년 외환위기 직후에 ‘콜라독립 815’란 토종 콜라가 등장해 반짝 인기를 끌었다. 외환보유액을 늘리자고 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이 번지고, 자본시장을 살리자는 ‘바이 코리아’ 구호에 해당 증권사의 펀드가 대박을 쳤다. 쌀 시장 개방 파고가 높아지자 ‘우리 농촌 살리기’를 내세운 쌀 음료가 잘 팔렸다.
충무로와 평단의 싸늘한 시선 속에 개봉된 ‘디워’가 6일 만에 300만 관람객 돌파라는 대단한 돌풍을 일으키면서 해묵은 ‘애국심 마케팅’을 다시 도마에 올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흥행 성공을 기원하는 애국적인 팬들이 졸작 괴수 영화를 심정적으로 밀어 준 결과라는 이야기다. ‘어느 시대라고 애국심 갖고 영화 봐주느냐’ ‘기성 영화인들 정신차려라’는 거센 반론이 쏟아진다. 애국심은 보편적이고 유용한 미덕임에 틀림없지만 ‘깡패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곳’(새뮤얼 존슨)이란 비아냥도 있다. 분파와 갈등의 소지를 염려하는 말이다. 국가기록원은 우리 현대사에 등장하는 대표적 풍속도로 보리 혼식, 미니스커트·장발 단속과 함께 국산품 애용을 꼽았다. ‘기록으로 보는 생활사’(가칭)에 담겠다고 한다. 좋은 영화인지를 따지는 공론의 장에서는 작품성이니 줄거리니 하는 말들로 결판을 내야 옳을 것이다. 박제화돼 가는 ‘국산품 애용’ 수준의 갑론을박은 좀 허전하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