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후야오위, 처절하게 당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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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준결승 제1국
[제8보 (111~128)]
白.趙治勳 9단 黑.胡耀宇 7단

흐름이란 어느 순간 일변한다. 전보의 백△로부터 이 판의 흐름은 일변하기 시작했다. 시종 늠름하게 나아가던 흑의 자세는 이 한수로 꺾였다.

후야오위7단은 초읽기에 쫓기며 급히 111로 젖힌다. 안경 속에서 반짝이던 그의 영민한 눈동자에는 깊은 수심이 배어 있고 황급한 손놀림에선 후회와 고통이 묻어난다.

112의 연결은 편안하다. 이로써 전보 흑?의 강경한 차단은 허망한 한수로 변했다. 113은 무리수였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정수라면 귀를 지켜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와서 귀를 지킨다면 흑▲는 A에 있어야 한다. 그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후야오위는 113으로 젖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116, 누구에게나 한눈에 들어오는 이 급소 한방은 어떻게 견디려는 것일까.

끝없이 전진해온 흑이 여기서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집은 폐허가 되고 돌들은 흩어지고 동강나고 있다.

117로 '참고도' 흑1로 이으면 백4를 당한다. 귀는 목숨이야 건지겠지만 백은 8까지 철통같은 두터움을 얻는다. 10으로 받아 둬도 충분하지만 백은 B부근으로 크게 역습할 수도 있다. 그걸 피해 117로 두었지만 118로 뚝 끊기자 흑집이 백집으로 변했다.

공격하던 흑이 피를 철철 흘리며 퇴각하고 있다. 드디어 백 우세. 그러나 조치훈9단은 이 장면에서 아예 확실하게 후환을 끊으려 한다. 126쪽의 중앙을 통째 살려내 흑의 마지막 희망마저 꺾으려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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