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조의원 처리… 민자·검찰의 미심쩍은 태도(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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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죄지은 사람이 떳떳해 하는 사회는 비정상적인 사회다. 떳떳해 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억울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것도 문제다.
김종인의원(민자)은 동화은행 비자금사건으로 구속되면서 『나는 그래도 깨끗한 편이었다』고 말해 세상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수억원대의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있는 그가 스스로 깨끗하다고 느낄 정도라면 수십억·수백억원을 챙긴 사람들이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과 한탄도 무성했다.
사정바람이 몰아치면서 정치인 여러 명이 다쳤다. 그중 누구는 「토사구팽」이라고 호소했고 다른 이는 『죄 없는 자 있거든 나를 돌로 쳐라』고 강변했다.
이런 유의 가당치고 않은 발언들을 잠재우는 방법은 딱 한가지 뿐이다. 엄정한 형평성이다. 법적용 면에서든 정치적인 제재조치에서든 저울의 눈금은 간격이 동일해야 한다.
지금 구치소 감방에 들어가 있는 김종인의원은 아마도 발빠르지 못한 자신의 둔한 처신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몸어디라도 탈이 생겨 주어서 용하다는 일본의 대학병원으로 치료차 떠날 기회를 갖지 못한 것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을 지 모른다.
민자당의 황명수 사무총장은 29일 일본으로 도피한 이원조 전 의원과 통화하면서 『우선 병환부터 치료하세요』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목소리가 개미소리보다도 작아 병색이 완연하더라』고 그는 말했다. 이씨는 이날 의원직과 당적을 내놓을 뜻을 밝히면서 「병세가 너무 심해 목숨부터 건져야겠다는 생각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황 총장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황 총장은 이씨의 귀국시기에 대해서는 「행여 다른 오해를 살 우려가 있어서」 아예 묻지도 않았다고 했다. 기자들은 『이씨와 사전에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 질문하자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 법인데 무슨 사전교섭이냐』고 펄쩍 뛰었다.
결과적으로 동화은행과 관련해 거론된 인사중 해외로 나간 이씨와 이용만 전 재무장관은 조사 한번 받지 않았고 국내에 있던 김종인의원만 당한 꼴이 됐다. 민주당은 『더 큰 죄를 지은 이원조씨에게는 해외도피후 의원직 사퇴로 면죄부를 준 셈』(박지원대변인)이라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안그래도 당서열 3위인 정재철 중앙상무위의장이 재산공개때 12억원어치의 주식을 숨긴것이 드러났는데도 「어차리 새 법에 따라 재공개할 때 성실하게 공개하면 그만」이라는 이유로 불문에 부친 민자당이다. 민자당에선 해외로 달아나는 거짓말을 하든 급한대로 소나기만 피하면 그만인가.<노재현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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