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협상 앞둔 정부 3중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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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탈레반과 한국 정부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탈레반은 3일 양측 책임자 간 협상을 마무리 짓자며 장소와 조건까지 내걸었다.

정부는 직접 협상이 추가 인명 피해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를 수용한다는 입장 표명은 자제하고 있다. 정부는 ▶'테러 집단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 원칙을 지키는 모양새를 갖추고 ▶협상에 나선 이상 반드시 성과를 거둬야 하며 ▶탈레반이 인질.수감자 맞교환 요구를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점 때문에 직접 협상에 고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테러 집단의 협상은 그 집단의 정체성과 폭력적 수단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크다.

게다가 탈레반 집단은 신변 보장까지 유엔에 요구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원칙을 거스를 수도, 탈레반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딜레마적 상황이다. 정부의 선택 폭은 그만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인질 맞교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월 이라크에서 납치된 미국 여성은 살해 위협 시한을 넘기고 80일 만에 풀려났다. 미국 정부는 우연을 주장했지만 이 여성이 풀려나기 전 미군이 붙잡았던 이라크 여성 5명이 석방됐다. 직접 협상이 기대감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조중표 외교부 제1차관이 지휘하는 카불 현지의 협상팀을 통해 탈레반 측과 물밑 접촉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고 한다. 대면 협상을 위한 사전작업 성격으로 풀이된다.

정부 소식통은 "현지 협상팀이 가능한 정보망과 접촉선을 모두 동원해 탈레반 측 의중을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과에 대한 교감 없이는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질과 수감자를 맞교환하겠다는 탈레반의 요구가 변경될 수 있을지다. 협상팀은 강성주 주 아프간 대사가 나서 탈레반 측에 전화로 "맞교환 요구는 한국이 수용할 능력이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탈레반 강경파는 위협 수위를 높이며 '양보 불가'를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탈레반 측의 요구가 정부의 권한 밖이라는 점을 납득시킬 수 있는 창의적 해법이 간절한 시점이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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