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성 민원」 많아 신나요”/청와대 민정 김관용행정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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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해결사 아닌 제도개선 부서로 인식을”
청와대 민정비서실 하면 「끗발」깨나 있는 곳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현대판 신문고격인 비서실의 고참 김관용행정관(49)의 하루는 고달프기 짝이 없다.
이른 시간인 오전 7시30분쯤 사무실에 도착해 책상에 수북히 쌓인 각종 민원서류를 꼼꼼히 챙기고 민원현장을 돌다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다 간다.
동료 행정관들과 함께 주섬주섬 서류를 챙겨들고 사무실 문을 나서는 시각은 오후 9시 전후.
몸은 파김치가 되지만 요즘 같으면 도리어 일할 맛이 난다고 김씨는 말한다.
답지하는 민원도 민원이지만 격려성 편지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듬뿍담긴 서신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마지막 해결창구로 인식하는 민원인들이 많습니다. 더욱이 문민정부에 대한 기대가 큰 때문인지 지난달 말까지 서면·전화민원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배나 되는 4백60건에 이릅니다.』
김씨가 밝힌 민원의 종류는 크게 4가지. ▲국정·사정관런 비리고발 ▲도박 등 현장민원신고 ▲국정·행정쇄신 민원 ▲선정기원 등이다.
이중 사정관련 민원의 경우 익명이나 모략성 투서는 처음부터 처리대상에서 빼버리고 기명으로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것에 한해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 넘겨 그 결과를 통보받는다. 처리기간은 빠르면 5일,길어야 1달을 넘지 않는다는게 김씨의 설명이다.
가장 곤혹스런 민원은 무턱대고 『김영삼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면서 떼를 쓰는 경우다. 전화로 『YS와 통화하고 싶다』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화를 받은 김씨가 곤란하다는 대답을 하기가 무섭게 『당신이 뭔데 가로막느냐』며 호통을 치는 등 막무가내다.
그래서 김씨는 고육지책으로 시간끌기 작전을 펼때도 있다. 이런 민원인과 30분이고 1시간이고 대화를 충분히 나눈뒤 자신에게 편지를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함부로 화를 낼 수도 없으니 자연히 속으로 삭히는 지혜를 터득했다.
최근 민원처리 과정에서 김씨는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새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얼마전 한 형사사건의 피의자 3명이 변호사 선임료와는 별도로 보석금 9백만원을 주고 풀려났으나 형 확정후 보석금을 돌려받을 길이 막막하다면서 가족들이 청와대에 진정을 했다.
변호사 사무소측은 관행상 돌려주기 어렵다고 버티다 민정비서실의 중재로 결국 돈을 돌려줬다. 예전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었다고 김씨는 설명한다.
『태양이 아무리 높게 떠있어도 그늘진 곳이 있듯 행정을 하다보면 문제가 있는 곳이 있게 마련입니다.
국민들이 청와대에 민원을 내면 모두 해결된다고 생각해선 곤란합니다. 개인민원처리 해결사가 아닌 정책판단이나 제도개선 전담부서가 되도록 민원인들이 도와줘야 합니다.』
김씨는 일선 세무서장을 거쳐 91년 5월부터 민정비서실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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