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얽힌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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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작품세계는 처참하지만 제목이 아름다우니 표지도 예쁘게 꾸미자』 『세대』 『문학사상』 『문예중앙』 『문학과 지성』 『창작과 비평』, 심지어 대학신문에까지 무려 8개 지면을 옮겨다니며 발표를 끝낸 원고가 최종적으로 문학과지성사에 왔을 때 편집진들은 최대한 표지를 예쁘게 만들려했다. 「위험한 책이 아니라 이렇게 긴 제목과 아름다운 표지를 지닌 환상적인 책」이란 인상을 주어 당국의 눈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78년6월 출간되자마자 책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물론 거기엔 숨막히는 유신 치하에서 환상적인 동화세계로나 빠져볼까 하는 독자들의 기대심리에 제목과 표지가 파고든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운동권의 폭발적 호응을 얻으며 우려했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관·청와대 주변으로부터 빨갱이 소설이니 잡아 가두겠다는 으름장이 나오고 서점으로부터는 경찰이 압수해갔다는 연락도 왔다. 그러나 이미 베스트셀러가 됐고 동인문학상이라는 굵직한 상까지 탄 작품이어서 건드리면 득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별다른 당국의 조치는 없었다. 그들은 작가와 출판사의「예쁜 책 만들기 음모」에 허를 찔린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 때문에 조세희씨는 다니던 직장을 떠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본격적인 글을 쓰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사표를 던진 것인데 사실 『난장이…』이 단편의 연작형태를 띠고 짤막짤막한 문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쁜 직장생활 중에 틈틈이 써야만 했던 집필 환경과 무관치 않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긴 제목은 또 제목 줄여 부르기의 효시를 이룬다. 말의 경제성·구호성을 위해 즐겨 말을 줄이는 운동권에서 이책을 『난쏘공』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문단과 독자 사이에선 지금도 「난쏘공」이란 제목이 통용된다.
『난쏘공』은 또 가장 판수가 많은 책으로 기록된다.
초판 세로쓰기가 39쇄, 86년 가로쓰기로 개판한 뒤 47쇄를 찍었으니 총86쇄를 기록한 셈이다. 그러나 판수에 비해 팔린 부수는 35만부 정도에 그치고 있다.
『난쏘공』은 특히 봄철에 많이 팔리는데 노동자들에 의해 이른바「춘투학습용」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나 노동환경이 18년 전의 『난쏘공』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함을 입증해주는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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