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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설계 빛나는 작지만 큰 집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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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05면

가회동 31번지는 한옥 골목으로 이젠 명소가 됐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빈집’에 이 골목이 등장하면서 영화를 본 외국인들이 서울에 오면 그 골목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생겨날 정도다.

사랑방으로 사랑 받는 -취죽당

가회동 31번지는 조선시대 말기 세도가인 여흥 민씨 민대식의 소유로 1만6500㎡(약 5000평)에 이르는 큰 대지였다. 현재 한옥 밀집지역인 가회동 31번지나 11번지 등은 당시 세력가들이 고래등 같은 너른 집을 짓고 살던 동네였다.

그런 가회동이 현재 북촌이라 불리는 모습으로 바뀐 것은 1930년대 무렵부터 소위 집장수들이 저택을 사 현재와 같이 약 165㎡(50평) 내외의 작은 필지로 쪼개 도시형 개량 한옥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에 따라 31번지가 수십 채의 지번으로 나누어지게 됐다.

취죽당은 바로 이 가회동 31번지 골목의 가장 높은 끝자락이다. 새로 지은 한옥이지만 주변의 기존 한옥들과 크게 튀지 않는 모습으로 얌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대지면적 139㎡(42평)에 건축면적 59.4㎡(18평). 전체 배치는 ㄷ자 형태. 방 네 개에 화장실 두 개, 부엌 등 작아도 있을 것은 다 있는 구성이다.

취죽당은 주거용으로 지어졌지만 주로 안주인 신순자씨의 작업공간이나, 도심에 사무실이 있는 바깥주인의 손님 접대용 사랑방으로 쓰인다. 그래서 취죽당에는 작은 규모의 한옥임에도 누마루를 만들었다. 이 누마루 자리엔 본래 사랑방이 있었다. 설계를 맡은 황두진 소장은 대문을 들어서자 사랑방의 벽으로 가로막히는 구조가 안 그래도 좁은 집을 더 답답하게 만든다고 생각해 사랑방 일부를 누마루로 바꾸었다. 이 누마루는 대문을 들어서면서 시선을 틔워준 것뿐만 아니라 대청에서 내려다보는 마당의 깊이를 더해주면서 취죽당 전체를 돋보이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몹시 무더운 날씨에도 누마루를 통해 대청 뒤의 창으로 흐르는 바람이 작은 집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것 또한 부수적 효과다.
또 하나의 특징은 작은 집을 활용하기 위해 수직적인 변화를 통해 공간을 구석구석 활용했다는 점이다. 우선 안방에서 올라가는 다락이 있고, 안방에서 세 개의 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부엌, 그 부엌 한구석에 평상 형태의 공간을 만들어 식사공간으로 쓰고 그 밑은 수납공간으로 활용한다. 공간을 이렇게 알뜰하게 활용한 결과 이 작은 부엌에 냉장고·김치냉장고를 비롯해 세탁기까지 너끈히 들어가 살림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작은 집에 두 개의 화장실이 있는 것도 재미있다. 손님용으로 사랑방 뒤쪽에 만든 화장실의 창은 이 집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작은 창을 통해 가회동 31번지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건넌방 뒤쪽의 화장실은 마치 걸리버 소인국을 연상케 할 정도로 작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취죽당은 꼼꼼하고 창의적인 설계가 작고 전통적인 한옥도 얼마나 살기 편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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