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말투 밉지않는 실언/민자 황 총장도 “못말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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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주변에선 “교언영색 안하는 막걸리형 매력”/실언록/「5월 계절여왕」 멋내다 “여왕의 달” 오발/공청회 말하다 “청문회”… 신문 동반실수/이용삼씨 “김용삼” 호칭… “YS 연상돼서”
정가에서는 흔히 민자당의 황명수사무총장을 막걸리형 정치인이라고 평가한다. 목소리부터 걸걸하고 말투도 거침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말의 실수가 잦은 편이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그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매력의 한 부분이라고 주변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사실 황 총장은 지난달 15일 취임한 이래 언어구사에 적잖은 문제를 보였다. 당주변에서는 그때마다 공소(떠들썩한 웃음)를 감추지 못하면서 『YS만 못말리는게 아니라 황명수도 못말려』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하고 있다.
지난 21일 강원 철원­화천지구당(위원장 이용삼) 개편대회때의 일이다. 황 총장은 격려사에서 한참동안 이 위원장을 「김용삼 위원장」이라고 잘못 불렀다. 그러다가 뒤늦게 이를 깨닫고는 『내가 김영삼대통령에게 미쳐 40년동안이나 따라다니다 보니 비슷한 이름만 나오면 저절로 실수하게 된다』고 순발력있게 변명해 장내에 폭소를 자아냈다.
황 총장은 다음날에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이날 경북 예천지구당(위원장 반형식) 개편대회에 참석,역시 격려사를 하면서 이 지역을 치켜세운다는 것이 그만 『예천은 「예도 예자」이름 그대로 예절의 고향』이라고 실수를 저질렀다. 예천의 「예자는 단술 예」. 그는 그후 기자들에게 『이름풀이를 하려고 일부러 한자지명을 알아본 것인데 누가 잘못 가르쳐 주어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짓을 하게 됐다』고 겸연쩍어했다.
또하나 웃지못할 이야기가 있다.
황 총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비리척결을 위한 공청회를 열겠다는 뜻을 『청문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잘못 표현,모신문이 이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그는 그러나 그 신문의 기사를 보더니 자신의 실수는 까맣게 잊은듯 『청문회라니 말도 안된다. 이 신문이 이 황명수를 잡아먹으려고 작정한 것 아니냐』고 흥분했다.
그는 이밖에도 『5월은 계절의 여왕』을 『5월은 여왕의 달』(5월4일 여야총장회담 인사말에서)이라고 하는 등 몇차례 더 실수를 저질렀다.
황 총장은 이런 잦은 실수에 대해 『우리 마누라와 딸도 늘 입조심하라고 충고하는데 잘 안된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그는 그래서 『치밀하지 못한게 흠이라는 나에 대한 평가는 아주 적절하다』고 달게 받아들인다. 그는 그러나 『내가 치밀함이 없이 엄범덤벙 살아왔으니 이렇게 살아남은 것 아니냐. 만일 너무 치밀했으면 그 험했던 세상에 어느 칼에 찔려 죽었을지 모른다』며 성격상 장점도 적지않음을 내세운다.
황 총장은 매우 직선적이다. 그의 말에는 대체로 교언영색이 없고 「욱」하는 그의 성격이 그대로 배어있다. 때론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듣는쪽이 민망스러울 지경이다.
그는 지난달 중순 재산공개 파동에 휘말린 모인사가 공직회의를 통해 대통령을 비난하고 당의 분란을 촉발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돌자 『그렇다고 그 사람의 주둥이를 인두로 지질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거침없이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최형우 전사무총장이 아들의 경원전문대 부정입학 의혹으로 사임하자 기자들에게 『최 총장이니까 대통령과 당에 누를 끼치지 않고 서슴없이 물러났지 나같으면 끈적대면서 주저했을 것』이라며 『이제 여러분들도 「송장」에 대해 그만 칼질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씨를 비호한 혐의로 구속된 국민당 박철언의원이 구속전 「표적수사」로 희생됐다고 주장한데 대해 『박철언이가 무슨 큰 인물이고 걸림돌이라고 정치보복까지 하겠느냐』고 일갈했다.
그는 무소속의원 영입을 민주당이 비난하자 『요즘 우리쪽만 신바람 나는데 누가 저쪽(민주당)으로 가려 하겠느냐』고 직설적으로 되받아쳤다.
황 총장에겐 그러나 노련한 구석도 있다. 어려운 질문을 넉살좋게 피해나가는 영리함도 엿보인다.
그는 취임하자 마자 그동안 최 전총장체제 아래에서는 김종필대표의 위상이 계속 격하됐던 점을 의식한듯 김 대표를 『수십년간 국가경영에 참여한 분으로 노정객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 바짝 치켜세웠다.
그는 보선지역인 강원 명주­양양에 민주계 원로 김명윤고문이 공천된 것을 김 대표가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질문에 대해 『대표가 기분 나쁠게 어디 있느냐. 오히려(연배가 비슷한) 친구가(원내에) 들어오면 좋지』라며 가볍게 받아넘겼다.
그는 또 최근 사정과 관련해 난처한 질문이 쏟아질 때면 『그런 것은 그만 묻고 이사람이 아주 부지런히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 좀 써달라』며 슬쩍 피하기도 한다.
늘 샘솟는듯한 젊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뜻으로 아호를 소천이라고 직접 지은 황 총장은 가끔 『나이(64세)가 많은 편이지만 15대때 한번 더해 5선을 채우고나서 후진을 양성하겠다』고 말한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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