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거짓말로라도 내 인생 긍정해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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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달의 바다

정한아 지음, 문학동네,
184쪽, 8500원

제12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이다. 한 심사위원이 “무엇보다 이 소설, 따뜻하잖아요”라고 했다는데, 말 그대로 따뜻하다. 자살 기도, 트랜스젠더, 미혼모 그리고 거짓말. 키워드는 이렇게 우울한데 내용은 따뜻하니, 일면 동화 같기도 하다.

 취직 시험에 번번이 낙방해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 ‘나’. 자살용으로 감기약 200알을 사온 날 할머니에게서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15년 전 소식이 끊긴 고모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가 돼 있다는 것이다. 미혼모였던 고모. “미안해요”라고 적힌 쪽지와 함께 다섯 살배기 아들을 남겨두고 사라져버렸던 바로 그 고모다. 그런데 그 동안 할머니는 다른 가족들 몰래 고모의 편지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우주선의 태양쪽 표면은 뜨거워지고 반대쪽에는 서리가 얼기 시작했어요” “저는 곧 몸이 땅에 닿지 않아도 잠을 이룰 수 있었어요” 등 편지 속에선 우주 여행이 일상이었다.

 ‘나’는 고모를 만나보라는 할머니의 부탁에 따라 트랜스젠더를 꿈꾸는 남자친구 민이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그런데, 고모는….

 “즐거움을 위해서. 만약에 우리가 원치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작은 위안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잖니.” 고모가 가짜 편지를 보낸 이유였다. ‘나’역시 고모의 거짓말에 기꺼이 동참한다. 고모 집 뒤뜰에서 주워온 돌멩이를 월석(月石)이라고 속일 정도로 적극적이다.

 올해 스물 다섯 대학원생인 저자는 소설의 주제를 고모의 마지막 편지에서 드러냈다.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다. ‘원치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건 ‘긍정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게 비록 거짓말일지라도 말이다.

 소설은 현실과 편지, ‘나’와 고모의 삶 등을 교차시키며 전개된다. “구조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문학평론가 김화영) “틀이 잘 짜여 있다”(소설가 성석제) 는 평을 들을 만큼 형식이 탄탄하다. 다만, 지나친 긍정의 부작용일까. 미혼모가 된 딸의 출산준비를 평화스럽게 해주는 할머니의 태도와, 15년 만에 엄마의 전화를 받고 불같이 화를 내던 고모의 아들이 불과 1주일 만에 마음을 푸는 장면 등은 아무래도 섣부른 화해, 어설픈 봉합처럼 보인다.

이지영 기자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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