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아테네] 6. 사격 서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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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지름 0.5㎜의 10점 과녁을 10m 밖에서 한 번의 실수 없이 40발을 쏘아 맞히는 일. 그건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국가대표 사격선수 서선화(22)는 그 '꿈의 기록'인 4백점 만점을 지난해 세 번이나 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만점 여인'또는 '10점 제조기'다. 만점 기록 중 하나는 지난해 4월 시드니 사격월드컵 본선에서 쐈다. 물론 더 이상은 깰 수 없는 세계신기록이다. 이어 7월 실업단 사격대회와 11월 대만 친선대회에서도 4백점을 기록했다.

창원사격장에서 훈련 중인 서선화를 지난 8일 만났다.

"저는 10점 쏘는 방법을 알거든요.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감'을 잃어버리지 않아요."

그의 이 말을 대표팀 공기소총 이동준 코치는 "사격은 불교의 '깨달음'과 흡사하다. 10점을 관통하는 법은 스스로 깨우쳐야 하고, 설명해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서선화는 당차고 고집이 세다. 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는 지난 5일 국내 여자 사격선수 최고 대우를 받던 국민은행에 사표를 던졌다. "여자 선수들만 있는 팀에 가고 싶다"는 이유였다. 누구도 그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는 전북 남원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총을 잡았다. 중1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공장에서 일해 1남3녀를 키웠다. 돈이 없어 고1 한 해 동안은 사격을 중단했었다. "형편이 어려워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고 끼니를 걱정한 적도 많았어요."

2001년 군산시청에 입단한 그는 2년 동안 번 돈으로 지난해 어머니에게 월세 아파트를 마련해 드렸을 때 가장 기뻤다고 했다.

공기소총은 본선 40발을 쏜 점수로 8강을 뽑아 결선에서 10발씩을 더 쏜다. 결선에서는 10점 과녁의 정중앙과 탄착점의 일치정도에 따라 다시 10단계(10.9~10.0점)로 점수를 매긴다. 워낙 미세한 승부여서 전자식 측정을 한다.

최근 서선화는 연습 때 결선 점수가 1백5점을 넘긴다. 본선 4백점을 합치면 5백5점으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 우승기록(미국 낸시 존슨.4백97.7점)을 훌쩍 넘어선다.

첫 금메달이 사격에서 나오게 짜여져 있는 올림픽 일정상 이번의 아테네 올림픽 첫 메달은 아마도 그의 목에 걸릴 확률이 커 보인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우선 두 명을 뽑는 국내 올림픽 선발전이 있다. 시드니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강초현(갤러리아)과 최대영(울진군청).이선민(청원군청) 등 강자들을 넘어야 한다.

동갑내기 강초현과는 지난해 대표팀에서 한 방을 쓰며 친구가 됐다. "둘이 손잡고 아테네 가자"고 약속했지만 누가 웃고 울지는 알 수 없다.

첫 발을 쏘기 전 그는 늘 돌아가신 아버지께 기도한다고 했다. "아빠, 잘 쏘게 해 주세요."

창원=정영재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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