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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처리의 기본방향(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경영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기업의 생사가 판가름나고 창업이나 청산에 수반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적어야만 비로소 선진경제에 한걸음 접근할 수 있다. 산업활동을 떠받치는 제도와 관행의 구석구석에 기업의 자유로운 생성과 소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겹겹이 싸여 있는한 산업 전체의 경쟁력 신장에는 저절로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한때 국내 주택건설업계 2위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대기업그룹 한양의 법정관리신청은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 안고있는 신진대사질환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준다. 교과서의 시장원리대로라면,그리고 특히 신경제가 내세우는 자율성과 민간주도의 원칙에 충실하자면 부실기업은 도태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기가 어렵다.
정경유착 비리에다 부실시공물의,경영진 분열,노사분규,빚더미의 재무구조 등 기업도태의 조건을 골고루 갖춘 거대기업의 처리문제를 두고 어느 누구도 선뜻 청산쪽을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경우에는 1조원이 넘는 은행빚의 상환,2만여명의 종업원,5천여 자재납품 및 하도급업체,시공중인 아파트 1만8천가구의 입주대기자가 한양연명의 담보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법정관리신청이라는 기업도산 모면의 최후수단이 동원됐지만 채권자·소액주주·거래업체·근로자·입주예정자들의 피해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앞으로 전개될 한양문제의 수습과정은 부실대기업처리에 대한 정부의 기본입장과 문제해결능력을 선보이는 최초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끌고 있다. 한양과 같은 유형의 대기업부실화를 낳는 경제구조가 정책의 산물임을 부인할 수 없는데다,특히 이번 경우에는 정부의 감독을 받는 많은 물량의 아파트공사차질이 예상되고 있어 정부로서도 응분의 책임을 지고 해결에 나서야 할 입장에 있다.
이미 정부당국은 대한주택공사에 의한 한양인수와 한은특융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방법치고 달리 뾰족한 수가 없겠지만 이것은 지난날 되풀이돼온 궁여지책의 해법임을 정부도 잘 알 것이다. 대한주택공사가 정부투자기관이라는 점에서 자칫 기업부실화의 손실을 국민의 부담으로 돌리게 할 위험마저 있다.
한양의 뒤처리에 이어 정부가 해야할 일은 비효율 기업의 퇴출을 원활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의 외부충격이 아닌한 기업도산의 리스크는 사전적으로 시장의 가격기구에 흡수되도록 함으로써 설령 대기업이 문을 닫아도 별다른 후유증을 남기지 않는 산업활동 체질을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신경제 5개년 계획에 포함시켜 다룰만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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