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근무 미대사관 떠나는 공보고문 박승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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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오랫동안 주한미대사관의 대한국 언론 창구를 맡아왔던 박승탁씨(65)가 오는 27일 정년으로21년간 일해온 미국대사관 공보관실을 떠난다. 그의 직책은 미국인 공보관 아래에 있는 공보고문. 그러나 그는 미국대사관에서 봉급을 가장 많이 받을 만큼 대사관의 터줏대감이다. 그래서 서울의 언론계나 정계엔 마치 미국대사관과 한국의 언론을 잇는 홍보창구처럼 되어있을 정도로 지면이 넓다.
미국대사관의 정보가 한국 정계에 큰 영향을 미치던 시절 그는 영어가 서투른 한국의 기자들이 미국대사관에 대한취재의 입노릇을 해주기도 했고 까다로운 미국비자를 급히 얻어 주는 궂은 일도 마다 않고 대행해주기도 했었다. 또 유신이 선포되던 72년부터 12·12사태와 5·18광주민주화 운동, 서슬 퍼렇던 5공 초기 등 뉴스다운 뉴스라고는 모조리 통제 받던 군부통치시절엔 모두가 목말라하던 미국 등 해외 뉴스의 은근한 공급자이기도 했다. 그가 미대사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일보 사회부장대우시절이었던 72년 8월.
17년간 근무하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시작한대사관에서의 그의 업무는 고작 국내언론의 미국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고 미국에서 배포되는 한국관련자료를 신문사와 같은 기관에 전하는 단순한 것이었다. 그러나 급박한 한국의 정치상황이 그를 이 단순업무에만 묶어놓지는 않았다.
유신과 긴급조치로 이어지는 긴박한 시절이 다가왔고 엄격한 보도통제 속에서 그는 미국에서의 한국 관련 정치·인권뉴스들을 제공했고 모든 것이 가려지고 알아서는 죄가 되던 당시로서는 그 하나 하나가 큰 뉴스들이었다.
타임·뉴스위크 등 외지마저 칼질하고 검은 색칠을 해 걸레처럼 들어오던 당시에는 그런 인쇄물이 제 모양대로 전달된다는 것 자체가 한국인에게 관심거리였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YS진영의 박종웅씨라든가 DJ진영의 한화갑씨와 친교를 맺게된 것도 그 시절의 이야기다.
그의 주역할은 어디까지나 미국인공보관과 함께 한국언론인들을 만나고 그런 모임들을 주선하는 교량역할이었다.
그러던 그가 12·12사태 때는 직접 나서기도 했다. 12·12사태 바로 다음날 일을 저지른 신군부의 허화평씨가 급히 박씨를 찾았다. 그는 보안사로 가서 12·12사태에 대한 그의 브리핑을 들었다. 그들은『우리가 일을 일으킨 것은 질서를 잡으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대사관공보관을 통해 미 국무부에 보고했다. 군부의 거사를 미국에 설명할 통로가 없어 애태우던 신군부가 박씨를 채널로 선택했던 것이다.
15년 이상을 근무해 미국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지만 굳이 마다한 그는 퇴직하면 손자 4명이 기다리는 가정으로 돌아갈 뿐이라고 말한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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