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TV 드라마『한강뻐꾸기』풋풋한 새얼굴 잔잔한 재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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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SBS-TV 드라마『한강뻐꾸기』(윤정건 극본·운군일 연출)는 녹화할 때 유난히 NG가 많이 난다. 남녀주인공이연기가 미숙한 신인들이기 때문이다. 이종원은 광고모델로 활동하다 영화『푸른 옷소매』에 출연한 것이 연기경력의전부인 신인. 여주인공 송혜령도 광고모델 출신으로『한강뻐꾸기』로 연기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햇병아리다.
요즘처럼 시청률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이렇게 신인들을 주연으로 기용하는 것은 연출자로서는 큰 모험이다.
TV드라마는 극 전체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떤 스타가 출연하느냐에 따라 시청률이 크게 달라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탤런트의 얼굴 보는 재미로 채널을 선택하는 시청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신인들을 주연으로 기용하는 것은 이런 프리미엄을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한강뻐꾸기』는 수·목 드라마 치고는 30%의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고, 극의 완성도면에서도 호화배역인 주말연속극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방송사들이 인기스타들을 데려오기 위해 1회 출연료 1백50만원을 제시하며 스카우트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배역에 신인들을 대거 기용한『한강뻐꾸기』의 성공은 고무적이다.
팔리는 얼굴을 내놓지 않아도, 신인들의 연기력이 부족해도 연출의 묘미로 이를 보완하면서 극을 무리없이 이끌어 나가면 시청자들은 봐 준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드라마의 주요배역들은 잘 팔리는 몇몇 인기스타들이 독식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기력과 배역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단지 인기절정이라는 이유만으로 캐스팅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제작진들의 편식경향 때문에 시청자들은「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 식상해 있다. 신인들은 그들대로 능력을 펼쳐 보일 기회가 적다고 불평한다.
제작진들이 인기스타 중심의 캐스팅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그쪽이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최진실을 동원한 MBC-TV『매혹』은 제작이 중단될 정도의 실패작이었다.
드라마의 승패에는 캐스팅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연출력일 듯 싶다. 사실『한강뻐꾸기』에 출연하는 신인들의 연기는 미흡한 구석이 많다. 그러나 주현·박인환 등 중견 조연연기자들의 완숙한 코믹연기를 부각시켜 극의 무게중심을 바꿔 놓음으로써 그 공백을 보완하고 있다.
연출자들이 조연급 배우들이나 신인들의 숨은 개성을 발굴해 내는데 좀 더 노력을 기울인다면 시청률을 위해 연기력도 갖추지 못한 인기스타를 거액을 주고 데려오는 일은 없어도 되지 않을까.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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