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단계서 발표 혼란/실효성 의문많은 경제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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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은행대출 주식전환·기업분할 명령권 등/“개혁에 몸다칠라” 재계 반대목소리 자제
개혁의지도 좋지만 쉽게 주워 담기 어려운 충격적인 정책을 채 익기도 전에 단순한 발상 단계에서 정부 고위층이나 그 주변 인사들이 툭툭 흘리고 다니는 일이 최근 부쩍 잦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대기업의 은행 대출을 주식으로 바꿔치기 시키겠다는 구상이 마치 정부에서 관계부처 협의속에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양 경제기획원 장관의 입을 통해 흘려졌다.
그 며칠 전에는 기업 분할 명령이라는 아이디어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위 관계자가 참석한 토론 자리에서 사전 여과없이 발표됐다가 불과 며칠 만에 정부의 부인해명이 발표되는 해프닝이 연출됐다.
또 재무부의 의견이 사전에 많이 집어 넣어져 지난 10일 발표된 금융산업 개편안에 보험사 등 제2금융권 금융기관에도 은행처럼 동일인 지분 한도를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털커덕 들어가,그렇다면 기존 대주주의 지분율을 낮추기 위해 생명보험사를 공개하는 것은 쉽게 수긍될 문제냐 하는 의문이 벌써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재계나 금융계·학계는 물론 관계에서도 각각의 경우에 대한 이견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우선 그 「경솔함」을 지적하는 소리가 높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고 그만큼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는 것들인데 너무 쉽게 생각하고,또 흘리고 다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각각의 경우에 대한 신중한 입장에서의 반론들이 최근의 개혁바람속에 「반개혁」으로 몰릴까봐 아예 입을 다물거나 얼굴을 감추토록 만드는 개혁의 역기능이다.
◇대기업 은행 대출의 주식전환=이같은 구상은 애초 우리 경제가 90년대로 접어 들면서 한참 상황이 어려울때 기업 부도나 은행 부실을 시장원리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어 궁여지책으로 거론됐던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기업은 경영권을 잃는다 하여,은행은 함께 망한다하여,일반의 시각은 여전히 기업에 대한 특혜라 하여 모두가 별로 곱지 않았었다.
이처럼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고육지책이 개혁의 바람을 등에 업고 마치 대기업 경제력 집중을 흩어놓을 수 있는 묘안이기나 한 듯이 다시 거론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금융계와 재계의 공통된 반응들이며 재무부 등 다른 부처에서도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기업 분할 명령=대기업의 독과점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 현실상 개방의 폭을 더 넓혀 외국의 초일류 기업과 경쟁시키면서 우리 기업을 더 크고 단단하게 키우는 것이 옳지 지금 단계에서 우리 스스로 기업을 쪼갰다가는 국제경쟁력을 잃고 말 것이라는 반론이 거세다.
◇제2금융권의 소유 제한=지난 89∼90년 대형 생보사의 공개가 추진됐을때 당시의 주가가 나쁘기도 했거니와 보험사의 자산은 가입자의 자산이므로 공개하기가 어렵고 또 물타기 증자라고 거세게 비판하는 일부 오도된 여론에 밀려 결국 공개가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과연 이제는 마찰없이 공개를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지분율을 낮추면서 경영권 보장에 대한 대안은 없어,그렇다면 은행에 이어 다른 금융기관도 주인없는 경영을 하자는 것인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은행장 추천위원회=신한은행·하나은행·보람은행 등은 지금까지 주인들이 있어 주인 행세를 하며 행장 인사를 자율적으로 해오던 은행들인데도 당국의 일률적인 조치에 의해 거꾸로 주인 아닌 사람들이 행장을 추천하는 「타율화」로 가게 됐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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