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복전파」10·26 정확히예언/화제의 책 고박재완씨 『도계실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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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역대 대통령 등 21명 사주게재/12·12직후에 주역부부 5쌍도 운세 물어/박 대통령 요청으로 5·16 거사날짜 택일
「5·16」은 이제 역사적인 사건을 상징하는 기호가 됐지만 다른날이 아닌 5월16일로 거사일이 정해진데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이날은 군사혁명의 리더인 박정희소장이 일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는 5행상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날이었다.
택일에는 다른 「혁명동지」의 의견보다 박 소장이 죽을때까지 가까이 했던 고 도계 박재완씨의 의견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완씨는 명리학의 대가로 박 소장과는 오래전부터 육영수여사를 통해 교분이 있었으며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요한 참모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은 또 자신의 생일을 실제보다 하루 늦은 날 치렀는데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주가 노출되면 정적들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도계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박 대통령 집권기간동안 박재완씨는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보낸 검은색 도요타 크라운승용차를 타고 무상으로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권좌에 앉으면 운명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때보다 크게 느껴지는 법.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12·12사태 직후에 주도세력들은 그러한 불안감을 드러냈던 흔적이 있다.
12·12사태가 발생한 직후 대전시 대흥동 박씨의 자택에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박씨를 승용차에 태워 서울 모처로 모셨다. 그리고 몇사람의 사주를 보여주며 이들의 운세를 물었다. 제시된 사주는 전두환·이순자 전대통령 부부를 포함,노태우·정호용 등 주도세력 다섯부부의 것이었다.
생전 박씨는 이같은 사실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어 오다 6·29선언이후 수제자인 유충엽씨(66·역문관주인)에게 털어놨다. 당시 사주를 보아준 5쌍의 운세도 만세력에 메모를 해 놓아 현재 유씨가 보관하고 있다.
10·26사태와 관련해서도 박씨의 일화가 남아 있다. 10·26전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은 부하를 시켜 박씨에게 사주를 물었다. 박씨가 풀어낸 사주는 『기미년운 항룡유회 풍국표곡 차복전파』(기미년<79년> 운세. 정상에 오른 용은 반드시 내려간다. 단풍과 국화가 떨어져 골짜기를 떠도는 계절에 차는 뒤집어지고 전은 깨뜨린다)였다. 김재규는 『차복전파』를 차가 뒤집혀 화를 당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전국에 20년 이상 무사고 경험의 운전기사를 수소문해 교체했다. 그러나 『차복전파』의 의미는 차씨 성을 가진 자가 뒤집어지고 전씨 성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깨뜨린다는 의미로 10·26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같이 고 박재완씨가 우리의 역사적 사건과 맺은 인연은 결코 적지 않았다. 지난 77년 박씨가 지은 『명리사전』 출판기념회 당시 각계 각층에서 보내온 화환이 타이탄트럭 2대분이나 될 정도로 많은 양이어서 생전 그의 넓은 교분을 짐작케 했다.
박씨가 운세를 보아준 사람은 김구선생에서부터 현재의 정·관·재계 인사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가 사주를 해설해 놓은 소위 「사성론」 원본이 그대로 보관돼 오다 이번에 책으로 펴져 나왔다. 『도계실관』(너른터간)이라는 이름의 이 책은 현존하는 인사들을 포함,박씨가 붓글씨로 직접쓴 「사성론」을 영인하고 이를 한글로 풀이하는 형식으로 70여명의 사주를 실었다. 무기명으로 실린 사주가운데는 정치인 C모씨·언론사 사주 B모씨 등 생존하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것이 다수 포함돼 있다. 또 이 책의 「참고명조」편에는 김구·이승만·윤보선·박흥식 등 21명의 인물들에 대한 사주풀이가 실명으로 게재돼 있다.
고 박재완씨는 1903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10세때 『사서삼경』을 이수하고 19세에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중국 최고의 명리학자인 왕보선생의 문하에서 명리학을 연수하고 귀국,전국을 떠돌며 학문연구에 정진했다.
그는 떠돌이 시절 당시 옥천부자로 이름난 육종관씨(육영수여사의 부친)의 과수원에 상당기간 식객으로 머문적이 있는데 육여사·박 전대통령과의 인연은 이때 시작된다. 48년부터는 대전에 정착했다. 92년 9월 타계할 때까지 그의 자택은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려는 가계 인사의 방문으로 붐볐다. 박씨는 『명리사전』『명리요강』『정전역해』 등의 저서를 남겼다. 수제자 유충엽씨는 스승 박씨를 『욕심없이 오로지 명리학에만 일생을 바친 분』이라고 회고하면서 『이번에 선생의 책이 나오게 돼 명리학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상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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