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親盧세력 결집"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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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또 놀란 것 아닌가…."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조순형 민주당 대표의 8일 기자회견을 보면서 청와대의 핵심 인사는 8일 이같이 말했다. 목소리엔 여유와 웃음마저 묻어 있었다. 지난해 말 재신임으로 盧대통령이 수세 국면을 뒤집은 이래 야당은 재신임 얘기만 나오면 신경을 곤두세운다는 게 청와대 측의 인식이다.

그는 "재신임 문제에서 대통령과 야당은 근본적으로 시각이 다르다"고 했다. 盧대통령에게 재신임은 결벽증에서 비롯됐지만, 야당은 정치적 노림수와 게임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재신임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고 재신임 정국에서 야당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게 핵심 인사의 설명이었다. 그는 "대통령은 야당을 칠종칠금(七縱七擒.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적을 일곱번 놓아주고 일곱번 사로잡은 데서 나온 고사성어)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재신임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9일이었다. 아태경제협력체(APEC) 총회에서 돌아온 盧대통령은 최도술 사건 개요를 보고받고 수석.보좌관 회의를 소집했다. 盧대통령은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말씀들을 해 보세요"라고 물었다.

그리고 참모들의 이런저런 얘기를 듣기만 하고 일절 자기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盧대통령은 갑자기 기자회견을 지시했고, 거기서 재신임 선언을 했다. 참모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새해 벽두부터 盧대통령이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하고 싶다'는 심정을 드러낸 것도 그때와 마찬가지라고 한다. 칼을 꺼냈으면 치든지, 아니면 명분을 갖고 거둬들여야 한다는 논리다. 국민투표는 현실적으로 물 건너 갔고,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없었던 걸로 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얘기다.

盧대통령은 이를 통해 친노(親盧) 대 반노(反盧)의 선명한 선거구도를 만들고 지난 대선에 이은 또 한번의 진검승부를 하겠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는 14일 연두회견에서 이 문제가 거론될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연계의 정도가 어느 수준일까도 관심거리다. 청와대 일각에선 "대통령직을 내놓고 총선을 치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는 신중론도 있다.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반론이다. 이들은 "선언적 수준에서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할 수 있다는 정도만 밝히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한다.

그러나 盧대통령이 실제 어떤 수준으로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시킬지, 구체적으로 어떤 발언을 할지는 청와대 안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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