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 카르자이 회담이 해결 분수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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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右)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아프가니스탄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다음달 5, 6일 만나 정상회담을 한다.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 석방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동료 수감자 석방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두 사람의 만남이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범아랍 일간 알하야트를 비롯한 아랍 언론들은 "이 회담이 한국 인질 사태 해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질 사태가 정상회담 시기까지 넘겨 3주 넘게 지속하면 양국 모두 한국과 국제사회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을 것이란 점을 이유로 들었다.

◆갑작스러운 정상회담=부시 미국 대통령은 29일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메릴랜드주의 대통령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했다. 미 국무부는 두 정상이 테러와의 전쟁, 아프가니스탄 상황과 양국 간 협조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알하야트는 30일 "현 시점에서 두 나라 정상이 이렇게 갑자기 만날 만한 특별한 사안은 없다"며 "미-아프가니스탄 정상회담은 한국인 인질 사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풀이했다.

신문은 이번 회담이 "카르자이 대통령의 요청으로 성사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탈레반이 요구하는 인질-수감자 맞교환을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낸 백종천 특사가 수도 카불에 도착한 뒤 사흘이 지나고서야 카르자이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이집트 전략분석가 디아 라슈완은 알하야트 기고문에서 카르자이와 부시의 협의→ 카르자이의 한국 특사 재접견 → 추가 협상 진행 → 한국-아프가니스탄 정상회담→해법 도출을 아프가니스탄 사태 해결의 방안으로 제안했다.

◆어떤 결정 나올까=아프가니스탄 정부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부시 행정부도 사실은 고민스럽다. '테러범들과의 협상은 없다'는 원칙을 스스로 깨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29일 알아라비야 방송에 출연한 이라크 출신 테러분석가 자파리 하심은 "아프가니스탄 측이 최대한 인질 석방을 유도한 뒤 해결이 어려우면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에 나설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카르자이의 이번 미국 방문은 인질 구출작전을 위해 사전에 부시 대통령의 승인을 얻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독자 결정으로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한국과의 관계에 큰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이를 공식 승인할 가능성은 적다. 한국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탈레반 측은 인질의 육성 인터뷰를 활용해 미국은 물론 유엔과 유네스코까지 끌어들였다. 이런 상황에서 인질 사태가 3주 가까이 전 세계의 이슈가 되면서 '테러와의 전쟁' 명분을 확실히 챙긴 미국이 수감자 석방을 묵인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아랍어 일간 알칼리지의 한 기자는 30일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하고 있는 동맹국 한국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탈레반 측이 석방 요구 수감자 명단을 아프가니스탄 정부 관리하의 교도소에 있는 인물로 바꾼 것도 이 같은 기류를 감지한 때문으로 보인다. 미군 기지에 잡혀 있는 수감자 이름을 맞교환 명단에서 빼서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석방을 압박하는 것이다.

두바이=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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