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혼자했나” 불씨남은 의혹/하나회 수사발표를 보는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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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기도 모르는 명단작성 도움없인 불가/백 대령 자수전 수뇌부만나 협의 흔적도
「하나회 괴문서사건」이 「인사불만자의 우발적 소행」으로 단정되긴 했지만 과연 그 배후는 없는지 등에 관해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0일 육군당국은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문제의 괴문서를 살포,자수한 백승도대령(41·육사31기) 단독소행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이것은 최근 군진급 인사 비리조사와 관련된 군내부 동요를 조기수습하려는 조치일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육군 장교들 사이에 가장 먼저 제기된 의문점은 육사20기부터 36기까지의 회원명단을 과연 한사람이 작성할 수 있을까 하는 점.
하나회의 경우 같은 동기생끼리도 정확한 회원수와 명단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에 비춰볼때 이번 괴문서 작성에는 필시 여러 기에 걸친 장교들의 「협조」가 있었을 것이라는게 일반 장교들의 일치돈 지적이다.
다음으로 당국이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다분히 축소지향의 인상을 주었다는 점이다.
괴문서 사건을 수사한다면 이 사건에 관한 경위와 전말 등 그 전모를 일단 규명하고,그 결과에 따라 관련자들을 인사조치하는게 상식적인 순서일텐데 이 사건수사와 조치를 완결한후 그 내용만 간략하게 발표하고 전보된 장교들도 영관급 10여명에 그친 것은 그런 지적을 불러일으킬만 하다.
바로 이점때문에 이번 사건은 당초부터 전모를 밝히기 보다는 「은폐」를 목표로 한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부에서는 당초 이 명단이 군단장 이동직전에 나온 점을 들어 「하나회 거세」의 명분을 찾으려 한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어 더욱 그런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또다른 의혹으로 백 대령이 자수하기 하루전 도일규수방사령관과 시내 모호텔에서 극비리에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도 사령관이 자수를 권유했다는 사실이다.
백 대령은 곧이어 김동진육참총장과도 만나 이 문제를 사전협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 대령의 전화를 통한 자수의사 통보에도 불구하고 당시 육본헌병감실이 백 대령을 즉시 체포하지 않은 점도 의혹으로 남는다. 자수(4월15일밤)에서 출두(다음날 오전7시)까지 백 대령의 행적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평소 「하나회」때문에 이렇다할 피해를 본 적도 없고 대령 1차진급자이며 육참총장(이진삼대장)의 수석부관까지 지내는 등 군내 위치가 좋은 편이었던 백 대령이 왜 이같은 일을 저질렀는지,그 이유 역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번 사건과 관련,조사과정에서 명단에 잘못 실린 것으로 밝혀진 한 장교(육사34기)가 백 대령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으며 여러가지 억측이 돌고있어 괴문서파문이 완전히 수그러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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