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동에 '영어체험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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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만 말하면서 영어권 지역의 생활 습관과 문화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서울 영어 체험 마을'이 오는 10월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문을 연다. 그러나 영어체험 마을 예정부지가 백제시대 주요 유적인 풍납토성(사적 11호) 부지 19만평 안이어서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민들에게 영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풍납동 281의 1 일대 옛 한국외환은행 합숙소 건물 4개동을 리모델링해 영어 체험 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8일 밝혔다.

부지 5천61평, 건물 연면적 3천8백68평의 옛 외환은행 합숙소에는 미국.영국 등 영어권 가정의 거실과 응접실, 은행.약국.우체국.도서관 등 편의시설, 체험 참가자 기숙사, 강의실 등이 들어선다. 하루 동시 수용 규모는 4백명이다.

프로그램은 ▶주말▶일주일▶2주일▶3주일▶1개월▶2개월 코스로 나눠진다. 한달 코스 비용은 50만원선(잠정).

합숙 참가자들은 입소부터 잠잘 때까지 영어만 써야 한다. 마을에 들어갈 때 외국에 입국하는 것처럼 모형 여권에 입국허가 도장을 받고 '마이클''톰'과 같은 새 영어 이름도 받는다. 한국말을 쓰면 벌점을 받아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는 합숙자들을 영어 능력에 따라 초급.중급.고급팀으로 나눌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런던이나 뉴욕처럼 꾸며진 거리에서 모형 달러를 갖고 은행.편의점.음식점 등을 이용하게 된다. 물론 청소부 아줌마부터 은행원, 음식점 종업원까지 모두가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이다.

서울시는 공항.호텔.우체국.영어권 가정 등의 모습도 실제와 비슷하게 꾸며 참가자들의 외국 적응 능력을 키울 계획이다. 시는 카페.편의점.기념품점 등 일부 편의시설은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풍납토성을 짓밟는 행정"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는 성명을 통해 "건물을 백제 유물 보관.전시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영어마을 조성을 강행할 경우 반대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백무경 체육청소년과장은 "건물 내부만 리모델링하고 땅은 전혀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문화재가 훼손될 염려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풍납토성 내 외환은행 숙소와 미래마을 등 1만4천여평은 백제유물이 발굴되자 정부가 2001년 문화유적지로 지정했다. 따라서 서울시가 건물 용도를 바꾸려면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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