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쓴 편지] 찬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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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름 찬드라예요. 찬드라 쿠마리 구릉. 웃겨요? 한국말로 하면 웃기지만 네팔말로 하면 하나도 안 웃겨요. 한국 사람같이 생겼다고? 아냐. 나 한국 사람 아니야. 한국 사람 아니라서 한국말 잘 못해. 나. 한국말 안 할래. 네팔말로 해도 되죠?

(네팔말로) 안녕하세요. 전 찬드라입니다. 외국인 노동자였다가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왔죠. 네팔 잘 아시죠?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은 한국의 득점 기록 쌓기에 공헌하는 나라로 기억하실 테고,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히말라야 산맥 자락의 아름다운 나라로 떠올리시겠죠.

아, 이렇게 우리말이 편한 것을. 네팔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랑 비슷하게 생겨서 한국 사람으로 많이 오해받는데 입을 열면 한국말이 서투르니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죠. 하지만 외국어란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한국 사람들도 영어 공부하느라 힘드시겠지만 미국 가면 평생 배운 영어로 단 두 마디도 어렵다면서요? 제가 한국말 쓰는 것처럼 영어로 더듬으실걸요?

그런데 만약 그런 한국 사람이 미국 가서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정신이상으로 오해받고 경찰이 잡아가 정신병동에 넣고 6년 동안 이름 모를 약을 먹이고 자기네들 맘대로 미국 이름을 붙여서 부르고 그랬다면 정말 화가 나겠죠?

그게 한국에서 제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전 섬유공장에서 미싱보조사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라면을 먹고 돈이 모자라 그걸 설명하려고 하다 말을 더듬는 걸 본 사람들이 제가 정신이 모자란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심신 미약자'. 경찰은 나를 그렇게 불렀죠.

그러다 정신병원으로 끌려갔어요. '정신분열증'. 그게 저의 병명이었어요. 전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을 할수록 이상한 소릴 지껄인다고 자꾸 약을 먹였어요. 내가 미친 한국 사람 '선미야'가 아니라 네팔에서 온 '찬드라'라는 걸 이해시킬 때까지, 그러니까 약을 그만 먹고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는 6년4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죠.

나는 뭘 잘못했을까. 아니면 정말 내가 미친 게 아닐까도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내 잘못은 한국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거였어요. 자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른 말을 쓰고 더럽고 힘든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이잖아요.

저는 외모가 한국 사람과 비슷해서 말만 잘했어도 덜 '다를 '수 있었는데 그걸 못했으니 제 잘못이죠. 외국인 노동자 많이 나오는 쇼 프로에서 그들의 한국말 솜씨에 다들 놀라셨죠. 그 사람들 모두 그런 심정이었을 거예요. 말이라도 한국 사람들이랑 똑같이 해야 '다른' 사람 취급을 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한국에서 '다르다'는 건 '심신 미약자'나 '정신분열증' 환자와 비슷한 말이기 때문에….

아뇨. 저 한국 사람 미워하지 않아요. 전 행운일 수도 있어요. 손목이 잘려나가도 치료조차 못 받는 사람도 많다던데. 전 그런 일이 있고나서 도와주시려는 한국 분들도 많이 계셔서 덕분에 고향에서 작은 가게를 열어 열심히 살고 있어요. 영화에서 우리 고향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신 분이 많은 줄 알고 있는데, 사실은 한국도 우리 네팔 못지 않게 아름답답니다. 네팔과는 다른 얕은 산들과 강과…. 그런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냐고요? 글쎄요….

이윤정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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