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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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르면 내년 7월부터 한국인의 무비자 미국 방문 길이 열리게 된다고 주미 한국대사관이 26일 밝혔다. 한국이 미국의 비자면제 대상국이 되면 관광이나 사업 목적으로 미국을 여행하는 한국 국민은 무비자로 미국에 입국해 90일까지 체류할 수 있게 된다.

주미 대사관은 "미 상.하원이 26일 합동 조정위원회를 열어 비자면제 프로그램(VWP)을 확대하는 내용의 '9.11 위원회 권고사항 이행 법안'(국토안보 강화법안, 본지 7월 19일자 2면) 최종안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이 법안은 다음주 초 상.하 양원을 통과할 것이며,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바로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자 거부율 대폭 완화=합동조정위가 합의한 법안은 비자면제 대상국 지정의 핵심 요건인 비자거부율(비자 신청자 중 발급받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 기준을 현행 3%에서 10%로 대폭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이 VWP 확대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는 10여 개 국가 중 비자거부율이 10% 미만인 나라는 지난해 비자거부율 3.5%인 한국과 거부율 6~7%인 체코.에스토니아의 3개국이다.

법안에 따르면 국토안보부 장관이 10%로 완화된 비자거부율을 적용해 VWP를 확대하려면 그 전에 미국 공항의 출국통제율(미국에 입국했다 출국하는 외국인의 신원 파악 비율)을 97% 이상으로 올려야 하고 전자여행허가(ETA)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ETA란 여행자가 항공 티켓을 구입할 때 항공사에 이름.주소.생년월일 등 신원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컴퓨터로 받은 국토안보부가 여행자의 신원을 조회해 미국에 입국할 수 있는지 여부를 즉각 통보해 주는 제도다.

주미 대사관은 "국토안보부는 현재 (이름 등 기본 신원정보를 파악하는) 기계판독식 출국통제 시스템을 94%까지 갖춘 만큼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97%의 요건을 충족하는 게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미국은 내년 상반기 중 ETA 시스템을 갖출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한국이 내년 상반기 중 전자여권을 도입하고 미국과 VWP에 대한 기술적 협의를 완료하면 이르면 내년 7월엔 한국의 VWP 가입이 가능하다고 대사관의 김은석 공사참사관이 설명했다.

◆지문 등 생체정보 제공 의무화=법안은 국토안보부가 일단 기계판독식 출국통제 시스템을 사용하더라도 2009년 6월 말까지 지문 등 생체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생체인식(또는 전자식) 출국통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갖추지 못하면 국토안보부 장관의 VWP 권한은 정지된다고 밝히고 있다. 주미 대사관은 "국토안보부는 2008년 말이면 생체인식 시스템을 갖출 것"으로 내다봤다. 이때엔 한국 국민이 무비자로 미국을 방문하더라도 출국 땐 지문 등 생체정보를 미국에 제공해야 한다.

◆인적 교류 활성화=미국을 방문하는 한국인은 연간 90만 명 수준이지만 한국이 VWP에 가입하면 그 숫자는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무비자 미국 방문이 실현되면 비자를 받기 위해 주한 미 대사관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면접을 해야 하는 불편이 사라진다. 한.미 양국의 상업적.인적 교류도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비자로 미국에 입국한 뒤 90일 이내에 출국하지 않고 남는 불법 체류자가 양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의 이민법 전문가인 전종준 변호사는 "현재 관광비자로 미국에 들어와 그대로 눌러앉아 버리는 한국인이 꽤 많은데 무비자일 땐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변호사는 "불법 체류자가 늘어나면 아르헨티나처럼 비자면제국 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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