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성과 없으면 「보복의 칼」”/클린턴정부 대일 강경대응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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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 건설시장 폐쇄적… 「한몫」 잃을까 불안/동경측 “올것왔다… 상당한 양보 불가피”
미국이 드디어 일본에 대해 「결과주의」라는 칼을 빼들었다. 미국기업의 일본시장참여나 대일수츨증가라는 실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보복조치를 취하겠다는 미국의 통상정책이 실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달 30일 일본에 대해 통상법상 제재조항을 적용키로 한 것은 빌 클린턴정권 등장이후 첫번째 실시되는 대일 강경조치다. 일본 정부가 이번 USTR의 발표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미국이 선제펀치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동안 주변국 반발을 무릅쓰고 공공사업 발주때 미국기업에 대해 특별배려를 해왔다.
일본은 87년 11월 간사이(관서) 국제공항 건설발주에 미국기업 참여를 허용한뒤 잇따라 미국기업에 상당한 우대조치를 취했다. 일본은 88년 5월 동경만 횡단도로 등 17개 사업,91년 7월 신치도세(천세)공항건설 등 17개 사업에 대해 미국기업의 입찰참여를 허용했다.
이와 함께 고충처리센터도 설치해 미국기업의 일본시장 참여를 돕기로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 8월부터 제2차 미일건설협의 수정협상에 들어갔다.
이처럼 미국의 요구에 응해 양보를 해오고 있는데 갑자기 미국이 차별을 이유로 보복하겠다고 나오자 일본은 당혹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일본건설업계는 『미국기업의 일본건설시장 참여부진은 미국기업의 의욕 부족이 원인』이라고 일방적 조치에 반발했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입찰제도가 일본보다 공평한 것은 사실』이라며 담합 등 입찰상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결과중시의 포괄경제협의 대상으로 건설시장참여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미국이 일본에 뭔가 트집을 잡으려는 상황에서 일본은 객관적으로 공공사업입찰이 불공정하게 이뤄져 왔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줘 미국이 공세를 취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가네마루 신(금환신) 전자민당 부총재 체포를 계기로 일본의 공공공사가 담합과 정실에 의해 이뤄져왔다는 것이 증명됐다. 입찰과정의 불투명성에 대해 일본 국내에서도 개선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둘째,일본건설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사업은 13조2천억엔이나 되는 경기대책의 기본인데다 98년 나가노(장야) 동계올림픽 등을 앞두고 대형프로젝트가 줄을 잇고 있다. 조기에 압력을 넣지않을 경우 대형프로젝트 참여기회를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이번 조치로 나타났다. 그동안 미국기업 우대사업 추가와 정부조달절차 개선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온 일본정부에 대한 불만도 이 조치에 한몫을 했다.
한편 슈퍼컴퓨터에 대한 조치는 미국이 일본정부 조달상황을 점검하겠다는 것이지 아직 제재의사를 표시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지난해 문부성 입찰에서 미국 클레이사가 떨어지는 등 실적이 좋지 않은데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일본정부 조달실태를 조사함으로써 일본에 압력을 넣어 결과가 보이는 실적을 올리자는 것이 미국의 속셈이다.
일본은 일단 협상에 응해 미국의 강도를 봐가며 대응하겠다는 자세지만,결국 상당한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 의견이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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