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테러의 세계화’ 미국이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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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테러가 내게 다가왔다’ .

 이렇게 시작되는 책의 첫머리는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에 23명이 인질로 잡히고 그 중 한 명이 살해된 뉴스와 오버랩되면서 마음에 확 다가와 박힌다. 우리에게도 테러가 더 이상 중동이나 내전에 휘말린 지구촌 반대편 나라에서 벌어지는 먼 이야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세계 경제의 상징물인 세계무역센터를 잿더미로 만들고 막강한 군사력을 대표하는 미 국방부를 강타한 9·11 테러를 목도하고 테러리즘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고민에 나선다.

 사실 테러는 입장에 따라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매도될 수도, 테러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는 집단이 선택한 저항의 몸짓이라고 항변할 부분도 있다. 그런 만큼 9·11 테러 직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미국 정부는 미국과 그 동맹국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는 어떤 집단이나 정부에 대해서도 우선적으로 공격할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 발언은 테러를 둘러싼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선과 악의 대결로 귀결되는 테러와 반테러의 대립에서 보편적 인권에 대해 누가 위협이고 누가 위협이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유일한 존재가 미국이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미국이 내세운 ‘테러와의 전쟁’이 오히려 테러의 세계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 건설이나 민족 독립 등을 위해 ‘지역’을 주요한 활동무대로 삼아오던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전 지구적 목표’를 앞세워 뭉치면서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집단이 ‘다국적 기업’의 면모를 갖추고 예전에 비해 훨씬 강력하고 파괴력이 큰 테러를 감행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냉전시대의 공산주의 체제가 사라진 자리를 테러라는 새로운 형태의 위협이 대체하면서 미국 등의 여러 국가의 정부가 경찰과 정보기관을 강화하고 권력을 강화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지구상에서 테러의 뿌리를 뽑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은이는 예상한다. 다만 테러를 길러내는 상황을 바꿀 수는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테러를 군사적인 문제 또는 전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테러를 사회·경제·정치적인 불균형 등에서 기인하는 문제로 보고 협상의 장으로 끌어들이자는 주장이다. 책에는 다양한 도표와 그래프, 용어 설명과 추가 설명, 관련 단체의 홈페이지 및 참고문헌 등이 부록으로 실려 있어 테러와 관련해 더 많은 정보와 접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놨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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