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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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사에는 뇌물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독보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경쟁자들의 질투때문에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발견한 목성의 4개위성을 당시 피렌체의 대공 코시모2세의 가문명을 따 메디치행성이라고 명명했다. 또 대공에게는 그가 발명한 망원경 하나를 보냈다. 이 선물은 즉각 효력을 나타냈다. 갈릴레이는 피사대학의 수석수학교수와 대공의 전속 철학자로 임명되고 두둑한 보수를 받게 됐다. 그 이후 피렌체는 그의 여생의 학문적 기지가 됐다.
조선조 명종때 사천 이양동이란 사람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 그는 관계요로에 뇌물공세를 편 결과 정문을 세우고 노역을 면제받았으며,천민신분을 면하고 서원으로 고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는 쥐꼬리만한 권력을 이용해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다가 마침내 곤장을 맞고 죽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당시 권력의 부패를 송대의 문헌을 인용해 개탄하고 있다. 오대때 권신이 정권을 잡자 뇌물왕래가 공공연했다. 과거급제도,관리들의 진급도 모두 뇌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차등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백성들은 「급제하는데 반드시 글을 읽을 필요가 없으며,벼슬을 하는데에 어찌 구태여 일을 잘하고 업적을 쌓아야할 이유가 있겠는가」고 한탄했다는 것이다.
퇴계는 방백과 수령들이 물건을 바치면 때로는 받아들이고,때로는 사양했으나 박절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주자를 빗대어 대답했다. 선물을 보내는 것이 잘못된 일이기는 하나 절교를 할 정도는 아니므로 그런 뜻을 보이고,무거운 물건(뇌물)은 물리쳐 그 사람의 잘못을 경계할 뿐이라고 했다.
요즘 공직자·금융계·교육계·군부를 가릴 것없이 많은 고위인사들이 뇌물 때문에 고초를 당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총체적 부패구조하에서는 뇌물을 주고 받는 것이 숨쉬는 것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토록 만연된 부패를 이때까지 방치하고 묵인해온 국민들도 부끄럽기는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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