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대선법 위헌여부 관심/잇단 논란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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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기춘씨사건 위헌결정땐 소취하 불가피/문제된 조항 개정작업이 먼저 추진될 수도
법원이 27일 김기춘 전법무부장관의 대통령선거법 36조에 대한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임으로써 앞으로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김 전장관의 유·무죄 여부와 선거운동의 합법적 범위가 함께 판가름나게 됐다.
또 이날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지지를 요청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됐던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도 자신에게 적용된 대선법 60조2항(특수관계를 이용한 선거운동금지)에 대한 위헌제청신청을 법원에 제출,대선법의 일부조항에 대한 위헌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김 전장관에 적용된 대선법 36조는 63년 생겨난 조항으로 규정자체가 너무 모호하고 포괄적이라는 비판에 따라 그동안 법개정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었다.
이 규정은 선거운동원이 아닌 자는 단순한 의견개진외에 어떠한 선거운동도 할 수 없게 돼있지만 몇사람이 모여 후보자들에 대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을 경우 이것이 단순한 의견개진인지 선거운동인지 그 기준이 불명확하다.
이 때문에 위법판정이 경찰·검찰 등의 자의적인 해석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 법적용에 잡음과 시비의 소지가 있어왔다.
만약 헌재에서 위헌결정이 내려지면 검찰은 공소사실을 변경,다른 혐의로 새로 기소할 수도 있지만 이 사건에 대해 그동안 검찰이 보여준 소극적인 태도로 미루어 공소취하 또는 해당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지기 쉬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조항에 대한 법 개정작업도 추진될 가능성이 있어 헌재의 결정전에 법에 개정될 경우 김 전장관에게 적용할 법조항 자체가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 이 경우 역시 헌재에서 위헌결정이 난 것처럼 검찰은 바뀐 법규정에 의거,공소장을 변경하거나 공소취하를 해야한다.
그러나 김 전장관에 적용된 법 규정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돼 위헌결정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김 전장관의 행위가 면죄되느냐 하는 것은 별개라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전직장관이 한 지역의 굵직굵직한 고위관료들을 모아놓고 특정후보에 대해 노골적인 지지요청을 하고 반대세력을 폄하하는 것은 선거때 몇만원짜리 돈봉투를 돌리는 행위보다 공명선거분위기를 훨씬 해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전장관의 담당재판부도 일반의 법감정을 의식한 때문인지 『첫 공판전에 위헌제청신청 인용여부를 먼저 결정해 달라』는 변호인측 요구를 뿌리치고 일단 김 전장관을 법정에 세우는 등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을 보였다.
아무튼 김 전장관과 정 회장에게 적용된 법률의 위헌여부 판정과 아울러 자유로운 선거분위기를 보장하면서 혼탁한 선거운동에 대해선 철저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선거법의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정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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