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가속화 입지확보/국민투표후의 러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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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토지사유화­민영화 조치 임박/반대파 제압 정쟁종식은 의문
25일 국민투표에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신임과 경제정책에 대한 신임을 얻는데는 성공했으나 보수파와의 정쟁을 완전히 끝낼 수 있는 힘을 얻는데는 실패했다.
공식투표 결과는 내달 3일 발표될 예정이나 비공식 투표소 출구 여론조사 결과와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의 중간보고에 의하면 옐친대통령은 4개의 문항 가운데 자신에 대한 신임과 경제정책에 대한 지지를 묻는 1항과 2항에 대해 각각 60% 53% 정도의 지지를 획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옐친대통령이 당초의 예상과 달리 높은 투표율 속에서 지난 91년 대통령선거 때와 비교해 지지율을 5% 이상 끌어올린 것과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혁정책이 53% 가까운 지지를 획득한 것은 이번 선거에서 그가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옐친대통령은 이같은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개혁을 보다 가속화 할 수 있으며 반대파를 정치적으로 무력화 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실 소식통들은 당장 내주중 옐친대통령이 토지사유화에 대한 포고령을 발동시키고 모스크바 및 주요 도시의 민영화 작업을 가속화 하는 법령을 발표할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국민투표의 최대목표가 끊임 없이 지속돼온 정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신헌법의 채택과 의회해산 및 조기총선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옐친의 승리는 그 의미가 크게 퇴색할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은 옐친대통령을 지지하면서도 의회해산에 대해선 유권자의 약44%만이 찬성,의회해산을 통한 정계물갈이를 노렸던 옐친진영의 계획을 사실상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또 헌법재판소가 이번 국민투표는 법적인 효력이 아닌 도덕적 효력밖에 가질 수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상태여서 옐친대통령이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대의회 강경책을 쓸 수는 없게되어 있다.
루슬란 하스블라토프 최고회의 의장을 비롯한 의회 지도자들은 옐친진영이 이번 투표 결과를 토대로 대의회 강경책과 신헌법 채택 등을 시도할 경우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경고하고 나와 러시아 정정은 국민투표 실시 이전에 비해 사실상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옐친대통령은 이번 국민투표에서 승리할 경우 의회를 해산하고 새헌법 채택을 위한 제헌의회를 소집하며,이를 기초로 조기선거를 실시할 것을 강력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번 국민투표에서 옐친대통령이 비록 단순과반수의 신임을 얻는데는 성공했으나 총 유권자의 과반수에 미달하는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헌법의 변경을 위한 행동을 취할 어떠한 명분도 없다는 것이 정치분석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만약 옐친측이 투표 결과를 자신들에 유리한 쪽으로 해석,조기총선이나 신헌법 채택을 위한 대통령 직할통치 등을 시도할 경우 의회는 대통령 탄핵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 또한 현행 헌법상 대통령이 헌법을 정지시킬 경우 자동적으로 대통령직을 박탈당한다는 규정이 들어있고,이때 대통령직은 부통령에게 자동으로 이양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옐친진영으로서도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못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따라서 이번 국민투표는 그동안 계속돼왔던 러시아 정치투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분쟁과 대결의 시작이라는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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