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체제 굳힌 김일성 생일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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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한의 국가주석 김일성이 8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대내외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이번 4월15일 생일잔치는 지난해에 비해 조용히 치러졌다.
그간 김일성건강에 대한 외부관측이 분분했으며, 그의 정치활동도 일정부문에 한정되고 그 공백을 김정일이 메워나간 게 사실이다. 일부 북한관측통들은 금년 신년사 낭독때나 4월7일 최고인민회의 개막식때 그에게서 「기력쇠잔한 8순노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의 최근 동정은 고령에 따른 노쇠현상이 뚜렷해진 건 사실이지만 정치일선에서퇴진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북한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는 3월 하순에 각도 농업부문 간부회의를 잇따라 주재, 식량증산대책과 농업기계화방침을 지시했으며 농업기계화연구소등을 「현지지도」하기도 했다. 또 이달 초에는 북한이 주력해 오고있는 전력·철도·화학공업부문에 대한 사업지도에도 나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김일성은 또 생일축하 사절단으로 평양에 온 단골손님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최고민족회의의장을 비롯, 적도 기니 정부대표단등 10여개 대표단과 인도·유고·루마니아의 주체사상연구회등 친북단체, 조총련산하의 각종 대표단을 일일이 접견하는 등 외교의 전행사를거르지 않고 있다.(중국은 처음으로 생일축하사절단을 파견치 않았다).
지난해엔 80세로 「꺾어지는해」에 해당돼 72년 환갑때 못지않은 성대한 생일잔치로 눈길을 끌었으나 올해는 평소 생일행사 규모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이번 생일행사에 눈에 띌 정도로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어 주목된다.
우선 북한은 81회생일을 김정일 후계체제 마무리와 결부시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2월 개최된 사노청 8차대회에 이례적으로 『김정일동지를 중심으로 일심단결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3월이후에는 「항일빨치산투쟁」관련 기념행사들에서 특히 「혁명전통 계승」을 강조해 김정일 후계체제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정일은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및 「준전시상태」선포를 주도한 뒤 최고인민회의 9기5차회의(9일)에서 국방위원장에 추대됐다. 국방위원장 추대뒤의 「축하집회」는 김일성의 생일행사와 맞물려 진행됐다.
또 김일성 생일행사의 일환인 「배움의 전리길 답사행군」(3월16∼30일) 과정에서 「만경대고향집 찾기운동」을 발기한 것이나 「3대 혁명전시관」을 개막(9일)한 것도 김일성생일을 김정일 후계체제와 결부시킨 것이다. 3대 혁명은 73년이래 김정일이 주도해와 그의 정치적 부상과 궤를 같이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평양의 2·8문화회관에서 열린 4·15경축 중앙보고대회에서 강성산총리는 김일성 업적을 열거하면서 『전당·전군·전민이 김정일의 두리에 하나의 사상의지로 굳게 뭉쳐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할 주체를 이루게 한 것』을 중요하게 손꼽아「생일맞이」와 「후계체제」를 연결했다.
그리고 김일성은 81회생일을 앞둔 지난 7일 손수 작성했다는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최고인민회의에서 강총리로 하여금 발표케 해 통일사업에 여전히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보였다. 강령이 남북관계의 전략적 고려에서 나온게 틀림없지만 발표시기의 선택은 「그가81회생일을 맞으면서도 밤낮없이 민족통일문제로 고민한다」는 걸 부각시키려는 면이 없진않다.
연례적인 각종 생일행사는 올해도 빠짐없이 열렸다. 배움의 천리길 답사행군, 4월의 봄친선예술축전, 만경대상 체육대회, 중앙사진전람회, 미술작품전시회등이 그런 행사류다. 북한은 생일을 맞아 예년과 마찬가지로 상훈수여, 공장·건축물의 준공 및 개관식, 김일성찬양물 출판등에도 힘을 쏟았다.
81회생일 언저리의 북한동정은 김일성이 여전치 정치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하며 김정일후계체제는 더욱 공고해졌음을 안팎에 시위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 유영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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