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딸 실력도 적성도 무시/의사 대물림 과욕 물거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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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큰딸 음악·미술 둘째딸은 문학 관심/막내딸 우울증 시달려 결석 잦기도
「의사가 뭐길래…」.
한서대 함기선이사장(52)의 세 딸이 모두 사전유출된 학력고사 정답으로 의과대학에 부정합격한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의사일가」를 이뤄보려던 함 이사장 부부의 헛된 집념에 세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함 이사장 자신이 미인 성형수술의 대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성형외과 개업의이며 부인 한승혜씨(51)도 과거 저명한 산부인과의사였던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명성이 2세에 대물림될 것을 희망했고 이러한 욕심으로 자식들의 적성을 무시한채 의사의 길을 강요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내신성적 최하위(10등급)로 90년 전·후기 입시에서 연세대 원주캠퍼스와 인제대 의대에 지원했다가 낙방,재수끝에 91년 충남대 의대에 합격했던 장녀(22)는 고교 3년동안 대부분 과목성적이 바닥을 맴돌았으나 음악·미술 등 예능과목에서는 최고점수를 여러차례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막내딸(19)의 J여고 동창생들은 함양을 「부모가 의사로 만들려 한다는 불만을 자주 토로했으며 이러한 강박관념으로 신경성 위염증세를 보이거나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결석이 잦았던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차녀(21)의 경우도 학업성적은 떨어지지만(내신 8등급) 남달리 감수성이 예민하고 시집을 즐겨 읽는 문학소녀로 통했으나 91년 단국대 의대에 수석합격,신문지상을 통해 의대 진학사실을 알게된 친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형편없던 학교성적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욕심으로 의사가 되는 길을 걸어야 했다.
세딸들의 고교생활기록부 장래 희망란에는 3년내내 「의사」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허욕이 남긴 상처는 너무도 깊고 컸다.
첫번째 부정이 드러난 막내딸은 전국 수석의 점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합격을 포기하고 최근 일본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
또 본과 1학년에 진급한 장·차녀 두딸도 앞으로 사실상 학업을 계속하기가 불가능한 상태다.
더구나 함씨까지도 19일 새벽 자살을 기도,「의사일가」의 꿈은 한 가정을 파괴하며 「부정일가」라는 영원한 멍에로 바뀌었다.<이훈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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