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 보물선' 발굴 태안 대섬에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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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낮 12시20분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대섬 앞바다.

"첨벙." 잠수부 3명이 씨뮤즈호를 박차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씨뮤즈호는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50억원을 들여 동아시아 최초로 마련, 7개월 전에 진수한 수중발굴전용선. 지난 5월 바다 속에서 청자가 발견된 뒤 2개월 만에 청자 8000~2만 점이 실려 있는 운반선의 잔해를 찾아내는 데 공을 세웠다. 잠수 중인 양순석 학예연구사가 든 수중카메라가 물속 9m의 뻘 바닥을 선실 모니터에 전송한다.

"탁도(물이 흐린 정도)는 어떻습니까?" 김승삼 선장이 마이크로 묻자 "날이 흐린 탓에 시정거리가 30㎝밖에 안 됩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곧이어 모니터에 청자 대접이 수십 개씩 묶음으로 세워져 있는 장면이 비친다. 잠수부가 청자 30여 점을 바구니에 담은 뒤 공기주머니를 부풀렸다. 바구니가 떠오르자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윤용이(명지대.도자사) 교수가 접시에서 뻘을 씻어 내며 설명을 시작했다. 유 청장은 "이제껏 바다 속 14곳에서 6만4000점의 청자가 발굴됐지만 모두 중하품이었고 이번처럼 수준 높은 것은 없었다"며 "왕실이나 고급 귀족, 관청에 납품하던 물건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수천 점의 고려청자를 싣고 가다 침몰한 고려 선박이 6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대섬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조사원들이 24일 오후 이곳에서 고려청자를 인양하고 있다. [태안=김태성 기자]

윤 교수는 "접시의 유약이나 구름 무늬 등으로 볼 때 강진 용운리 계통의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제작 시기는 순청자의 전성시대인 12세기 중후반"이라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1146년 사망한 고려 인종의 능(장릉)에서 출토된 통모양 잔과 거의 똑같은 잔이 나왔고, 1180년께 등장하는 상감청자는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윤 교수는 "고급 청자를 실은 침몰선이 나오기를 여태껏 기다려 왔는데 이번에 실물을 대하게 됐다"며 "대접이나 접시뿐 아니라 참외 모양 주전자(사진) 등 품질이 좋고 바다에선 거의 인양되지 않던 청자도 발견돼 도자사적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발견된 배는 850년 전쯤 생산지 전남 강진을 출발,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가던 중 물살이 빠른 이곳 해역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체는 폭 7.3m, 길이 7.7m의 바닥과 상판, 6㎝ 두께의 바깥판, 돌로 만든 닻 등이 남아 있다. 최항순(서울대.선박사) 교수는 "고려시대 배는 폭과 길이의 비율이 세 배를 조금 넘으니까 원래 선체 길이는 20m가 넘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청자를 실은 우리나라 침몰선으로는 전남 완도(1983)와 전북 군산 십이동파도(2003)에 이어 세 번째이자 크기는 국내 최대"라고 평가했다.

해양유물전시관 문환석 과장은 "대섬에 방파제가 생기면서 물길이 바뀌는 바람에 뻘 속에 묻혀 있던 선체와 도자기 등이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배의 잔해 위에 실린 것이 표면에 2000점인데 아래로 3겹까지 확인 됐으니 최소한 6000점이 있고, 인근 뻘 속에 1500여 점, 이미 인양한 것이 500여 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발굴된 청자의 추정 가격에 대해 기자들이 물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흠이 없는 앵무새 문양 접시는 약 500만원", 유 청장은 "참외 주전자는 손잡이가 깨지지 않았으면 약 10억원, 이미 깨졌으니 약 5000만원"이라고 추정했다.

문화재청은 청자는 11월 초까지, 선박은 내년 중순까지 인양을 마칠 예정이다.

태안 =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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