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범여권의 난맥상, 역사의 얼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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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작금의 범여권 난맥상은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다. 대선이란 현실에 대의(大義)는 밀려나고, 합당의 작심(作心)은 며칠 못 간다. 대선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들의 난맥상은 역사에 얼룩으로 남을 것이다.

 어제 열린우리당에서 15명이 또 탈당했다. 1월에 시작된 탈당 행렬의 네 번째다. 100년 가자던 다수당이 3년여 만에 58석의 사실상 원내 제3당으로 쪼그라들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파는 사태 초기에는 당을 사수할 듯했다. 그러더니 대통령은 대통합 수용 쪽으로 말을 바꾸었고 일부 친노파는 탈당에 뛰어들었다. ‘노무현 정치’가 의미가 있다면 대통령과 친노 그룹은 숫자가 몇이든 당에 남아 선거의 심판을 받겠다고 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평생 “나는 당당했다”고 자랑해 왔다. 그런데 정작 정권의 끝물이 다가오고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합 압력이 거세지자 나약해졌다. 노무현답지 않다.

 민주당도 흔들렸다. 당은 2004년 4월 총선 때 탄핵 역풍으로 한 자릿수 의석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민주당이란 이름엔 정통 야당의 40년 법통이 담겨 있다. 민주당은 이름과 정신을 지켰어야 했다. 본가(本家)의 체통을 지키며 열린우리당의 투항파를 흡수해야 했다. 그런데 달랑 열린우리당 탈당파와 새살림을 차렸다. 박상천 대표는 ‘실정 책임 친노 인사’를 배제하겠다더니, DJ 의 압력을 받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원조(元祖) 민주당파는 이렇듯 명분을 버리고 세 불리기에 나섰다가 한 달도 안 돼 현실의 냉혹함에 시달리고 있다. DJ의 아들과 측근 호남 그룹이 대통합을 향해 모두 당을 떠날 판이다.
 제3지대 대통합파도 모양이 이상하다. 소수 친노파를 떨치고, 원조 민주당파를 내치고, 그들은 뭉친다 한다. 곧 80여 석으로 원내 제2당이 될 듯하다. 그런데 어색한 비빔밥이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시민단체 그룹에 지도부의 반을 떼어주고, 통합파 내 어떤 세력은 한나라당에서 도피한 인사 밑에 모이고 있다. 하는 일이 모두 어지럽고 궁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