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철조망(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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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모처럼 시간을 내 동해의 해안선을 따라 여행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게 하나 있을 것이다. 가없이 넓고 넓은 동해의 푸른 물결이 공해에 찌든 우리의 가슴을 탁 트이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무겁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해안선을 따라 끝도 없이 쳐진 가시철조망 때문이다.
안그래도 넓지 않은 국토의 분단으로 비무장지대에 살벌한 철조망이 들어선 것도 한스러운 일인데,그 반쪽짜리 땅의 해안선마저 철조망을 둘러치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새삼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비무장지대의 철조망은 53년 7월에 조인된 휴전협정과 함께 등장한 전쟁의 산물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10여년의 세월에 흐른 뒤에 등장한 이 바닷가 철조망은 그 설치동기와 장소가 전쟁하고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알다시피 이 해안 경계철조망은 지난 68년 북한 무장공비 1백30명이 울진·삼척해안으로 침투하는 등 60년대 초반부터 해안 침투가 잇따르자 지난 69년부터 동·서·남해안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설치된 해안철조망의 총연장은 1천2백40㎞·이남지역의 해안선 총연장 5천9백89㎞의 5분의 1이 철조망에 둘러 싸여 있었다. 따라서 주민들의 생업에 지장을 주는 것은 물론 온 국민에게 불편을 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국방부는 지난 91년 이 해안 철조망 가운데 53%인 6백60여㎞를 단계적으로 철거해 나갈 계획을 세우고 우선 동해안과 남해안의 일부 철조망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현재 남은 철조망은 1천37㎞. 이 가운데 관광지와 해수욕장,마을주변의 철조망 90㎞가 올 여름에 또 철거된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동서의 냉전은 벽과 철조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61년 8월13일 일요일 야밤을 틈타 동독측이 설치한 전장 45㎞의 베를린 장벽이었다. 그러나 그 베를린장벽이 지난 89년 허물어지면서 동서냉전은 봄눈녹듯 사라졌다.
이제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이데올로기의 장벽」은 우리의 비무장지대에 쳐진 철조망이지만,그 아픈 상처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바다를 가로막는 해안 경계철조망이다.
이런 철조망이 모두 철거되는 날 우리의 「마음의 철조망」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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