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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쟁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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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옥수수의 원산지인 멕시코가 옥수수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옥수수 값 폭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 때문이다. 지난봄에는 수도 멕시코시티 한복판에 12만 명이 모여 정부 당국을 긴장시킨 일도 있었다. 멕시코 서민에게는 옥수수로 만든 전병인 토티야가 주식이다. 그런데 최근 1년 새 토티야 값이 세 배로 뛰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래 싼값에 들여오던 미국산 옥수수 물량이 확보되지 않아서다. 옥수수 흉작 때문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가 추진 중인 바이오 연료 정책의 여파다.

 옥수수를 발효한 뒤 정제하면 에탄올이 나온다. 이를 휘발유와 혼합해 만든 바이오 에탄올은 자동차 연료로 쓸 수 있다. 최근의 기록적인 고유가와 중동 정세 불안 등으로 미국은 바이오 연료로의 전환에 적극적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올해 연두교서에서 바이오 연료 소비를 늘려 향후 10년간 석유 소비를 20%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곡물 유통업체들이 앞다퉈 바이오 연료 분야로 진출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바이오 연료 공장과 주유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옥수수 가격 곡선은 가파른 상승 커브를 그렸다. 미국 내 수요를 충당하느라 수출 물량은 급격히 줄었다. 10여 년간 NAFTA의 덕을 톡톡히 봐 온 멕시코인이 ‘NAFTA 재협상’을 시위 구호로 내건 연유다.

 멕시코인만 괴롭게 된 게 아니다. 바다 건너 일본인의 식탁에도 바이오 연료 붐의 여파가 밀어닥치고 있다. 옥수수가 주재료인 사료값 폭등을 견디지 못한 일본의 양계업자나 축산농가가 파산 또는 폐업하는 사례가 잇따라 나타났다. 고기 값과 햄 가격이 뛴 것은 불문가지다.

 옥수수뿐 아니라 다른 곡물의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농민들이 너도나도 ‘돈이 되는’ 옥수수로 재배 품종을 전환하면서 다른 곡물의 생산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산 콩으로 두부나 낫토(納豆)를 만드는 일본 업체들이 콩의 양을 줄이는 사실상의 가격 인상 조치를 단행했다. 독일에선 맥주 값이 올랐다. 이 역시 보리 농가가 옥수수로 전업한 까닭이다.

 이 모두가 식량이던 옥수수가 귀중한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구촌 곳곳의 분쟁 지역이나 재해 지역에 구호 물자로 옥수수를 보내던 일도 이제는 사치에 가깝게 됐다. 사람과 자동차가 옥수수를 놓고 벌이는 쟁탈전에서 자동차가 사람을 이기는 양상이라고나 할까.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