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새모어 미국외교협회 부회장·북한핵 전문가 칼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호 26면

나는 최근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의 여러 고위 관리와 전문가를 만났다. 북핵 문제에 대한 6자회담 합의(2월 13일) 결과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이 합의로 워싱턴은 완전하고도 즉각적인 핵무장 해제를 북한에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북한 정권의 전복도 추구하지 않기로 했다. 예상대로 중국 인사들은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변경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베이징의 입장에서는 2월 합의로 한반도 위기 악화를 피했고, 6자회담을 통한 추가적 핵무장 해제 협의라는 틀이 짜였다. 중국은 더 나아가 6자회담을 통해 동북아에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체제가 수립되기를 바란다.

'한반도 정세' 우려하는 중국

의외의 사실도 알게 됐다. 중국은 최근의 상황 전개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중국의 반대를 무시한 평양의 핵실험 강행은 베이징을 분노케 했다. 중국의 대북(對北) 영향력이 의심받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과 북한이 직접 대화라인을 마련하고 미국과 한국도 관계를 복원했기 때문에 중국은 더 이상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중국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중국은 앞으로도 6자회담의 주최국 역할을 맡을 것이지만 말이다. 중국 측 인사들은 북한이 강대국들을 ‘가지고 노는’ 것을 막으려면 중·미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김정일 체제가 당장 붕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한반도 사태의 급변에 대비할 수 있는 비공식적인 비상계획을 미국과 중국이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핵 문제에 러시아가 다시 끼어든 것도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중국은 미 재무부가 입장을 바꿔 방코델타아시아(DBA) 문제가 해결되길 바랐다. 대신 러시아 은행을 통해 미 연방 은행에 있는 2500만 달러가 북한으로 송금됐다. 베이징은 이러한 모스크바의 ‘호의’의 이면에는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복원하려는 속셈이 있다고 의심했다. 중국 측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르면 북한은 대(對)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러시아의 재등장을 반긴다.

이런 정치 게임을 떠나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미국이 북한 핵을 용인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사실 중국은 수년 동안 부시 행정부가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워싱턴이 북한을 핵무장 국가로 인정하려고 몰래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한다. 인도를 예로 들며 한 중국 관리는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이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워싱턴은 핵무장을 꾀하는 나라를 강하게 압박하지만 막상 핵실험이 강행되면 그 나라를 핵무장 국가로 인정한다”고 그는 말했다. 또 다른 중국 관리는 미국이 중국을 배신했다며 분노했다. 1998년 인도가 핵실험을 실시하자 중국은 핵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에 협조했으나 미국은 이내 인도를 핵무장 국가로 인정하고 심지어는 인도가 대(對)중국 핵 타격 능력을 갖추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핵무장 국가로 인정하면 이를 빌미로 한국과 일본도 핵을 개발할 것이라고 중국은 우려한다. 대만까지 나설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중국 통일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나는 인도와 북한은 경우가 다르다고 해명했다. 인도는 미국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민주국가이며 강대국이자 떠오르는 경제 강국이다. 북한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맡고 있는 전략적 역할은 한국과 일본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만약 서울과 도쿄가 핵무기를 개발하면 미국의 보호가 덜 필요하게 되고 워싱턴의 대(對)아시아 영향력은 줄게 된다. 워싱턴은 여러 아시아 국가 간의 정치적 경쟁과 상호 불신으로 득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핵무기 경쟁이 이 지역을 불안정하게 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이 손상되는 것은 미국의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손상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핵무기가 확산되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곧 공식적으로 용인할 거라는 중국의 우려는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 가지 면에서 내가 만난 중국 측 인사들의 견해는 옳다.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북한의 핵무장에 도움이 됐으며 북한의 핵무장 해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 6자회담이 좋은 결실을 거두기를 우리는 바라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북한이 핵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하고 자유롭다고 느끼게 될 때까지 북한은 핵에 집착할 것이다. 평양은 핵 포기의 전제조건으로 여러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종결하는 조약의 체결, 북·미 외교 정상화, 미국의 경제제재 철회, 핵에너지 개발이 포함된 상당한 정도의 경제 지원 등등. 이것들이 조속히 달성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정황 때문에 좋건 싫건 우리는 당분간 핵무장한 북한의 위협을 통제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핵무장 해제가 완결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이전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이 지역 국가들이 방어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궁극적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또한 인도와 같은 취급을 받게 해달라는 북한의 요구를 거부해야 한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지만 우리들은 변함없는 태도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정리=오병상 기자
 
▶게리 새모어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군축 담당 대통령 특보로서
북ㆍ미 제네바 합의 때 미국 대표단 부단장으로 참석한 외교전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