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유죄」일 수는 없다/김종혁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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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정성진대검중앙수사부장은 29일 오후 대검 기자실을 찾아와 스스로 쓴 「사의표명」자료를 내놓았다.
「본인이나 가족은 투기·탈세 등 일체의 부도덕한 행위를 한 일이 없고,평생을 깨끗하고 충직한 공직자로서 처신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으나 처가 작고한 모로부터 재산을 유증받아 장기간 보유한 것이 그 자체로 국민적 주시의 대상이 된 점에 유념,국민과 더불어 영속해야 할 검찰 조직보호와 국가사정작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검사의직을 사임하기로 결심하였음」.
정 검사장은 신고재산 62억여원중 50억여원 이상은 고인이 된 장모로부터 받은 유산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상속된 땅은 모두 투기열풍이 불기 훨씬 전인 60∼70년대 초에 싼값에 산 것이었고 그동안 한번도 거래된 사실이 없어 누가 봐도 투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 검사장의 그 많은 재산형성에 부도덕한 구속 또는 탈법이 있다면 당연히 사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모아 어떤 식으로 관리했나」가 아니라 단지 「재산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사표를 써야한다면 그건 곤란하다. 『재산을 적게 신고한 공직자 가운데 부정축재를 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이라면 정 검사장의 경우는 형평에도 어긋난다.
실제로 공직자 사회에서는 고액신고자는 성실신고자라며 오히려 중위권 신고자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김영삼대통령의 개혁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있다. 수십년간 자행돼온 권력형 축재를 뒤흔들어 부와 명예가 동시에 갖기에는 벅찬 것임을 일깨우고 공직자의 윤리를 새롭게 정립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할 룰은 있다. 개혁바람에 옥석이 구분되지 않고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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