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와 FTA 협상하러 간 외교부·산자부 개방 폭 이견 자중지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2차 본협상에 나선 한국 협상단이 협상이 열리고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상품시장 개방 범위를 놓고 불협화음을 내며 자중지란에 빠졌다. 우리 측 개방안이 소극적이어서 추가 개선이 필요하다는 외교통상부의 입장에 상품 분야 중 95% 정도를 관장하고 있는 산업자원부가 이를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17일(현지시간) 한국 협상단의 산자부 관계자는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EU 측이 우리에 제시한 상품 개방안(양허안)에는 이미 무관세로 교역되고 있는 품목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실제로 관세를 철폐해야 할 품목끼리 비교하면 우리의 개방 폭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이는 외교부가 전날 "우리 측 상품 분야 개방안이 EU에 비해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협상에 애로가 많다"고 밝힌 내용을 반박한 것이다. 외교부의 김한수 협상 수석대표는 전날 "양측이 제시한 시장개방안에서 상품 분야 관세 조기 철폐 비율이 80% 대 63%로 우리가 낮아 협상에서 EU를 압박하기가 어렵다"며 이같이 밝혔었다.

그러자 산자부 관계자는 이날 외교부의 발언을 겨냥, "EU 측의 상품 양허안에는 3년 내 관세를 없애는 조기 철폐 품목이 80%지만 이 가운데는 이미 관세가 없는 품목이 52%에 이른다"고 말했다. 우리의 조기 철폐 비율은 63%지만 무관세 품목 비중은 26%에 불과한 만큼 FTA를 통해 관세를 철폐하는 품목의 비율은 28% 대 37%로 우리가 더 높다는 게 산자부 주장이다. 또 시장개방 개선 입장도 우리가 EU보다 먼저 나서 밝힐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양측은 이 같은 입장 차이로 현지에서 열린 협상단 내부 전략회의에서도 상당한 의견 차이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둘째 날 결과에 대한 브리핑에 나선 김 대표는 "산자부와 이견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시 기존 입장을 강조하며 재반박에 나섰다. 김 대표는 "시장개방 범위는 공산품 같은 상품만을 놓고 봐선 안 되며 농수산물과 전체 품목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며 "전체 품목으로 따져볼 때 EU 측의 관세 조기 철폐 비율이 우리보다 5%포인트 정도 높아 EU의 시장개방 폭이 우리 측보다 크다"고 주장했다. 산자부처럼 상품 분야만 놓고 근시안적으로 봐선 안 되며 모든 품목을 감안해 균형 잡힌 협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자부와 외교부는 두 부처의 통상 기능을 분리해 만든 통상교섭본부가 외교부에 속하게 된 1998년 이후 각종 통상 협상에서 협상전략에 대한 상이한 입장 차이로 계속 갈등을 빚어 왔다 .

그러나 이번 협상 현장에서도 양 부처가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내부 조율 과정에서는 협상 전략을 놓고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협상 현장에서 스스로 이견을 드러낼 경우 국익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병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