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은행장 사표 무엇 뜻하나/금융계에 사정한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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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꺾기」·대출커미션 등 관행내사/금융·기업활동 등 위축 우려도
금융계에서부터 사정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김준협 서울신탁은행장에 이어 이병선보람은행장이 사표를 내자 그렇지않아도 은행감독원장과 국책은행장 인사가 임박해 어수선했던 금융계에 긴장감이 증폭되고 있다.
두 시중은행장의 전격적인 사의표명은 당국이 본격적이 사정활동에 들어가기에 앞서 자진사퇴형식을 취한 「윗물맑게 하기」 작업으로 풀이된다.
새 정부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강조,세제·금융부문에서부터 부패와 부조리를 뿌리뽑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경제를 회복시키는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은행권에 대한 본격적인 사정활동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동안 물의를 빚어온 은행장급중 대표적인 2명을 스스로 물러나게 한 것 같다는 이야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대통령이 19일 경제활성화를 강조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곧 「신경제 1백일계획」이 나오는데 모든 금융기관에 대한 일제 특별검사로 금융기관의 영업활동에 지장을 주어 자금흐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형편을 생각할때 결코 소망스럽지 않은 일』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서 개혁자체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그동안의 내사과정을 토대로 부분적인 금융계 정화작업을 벌임으로써 정부의 개혁의지도 보여주고 또다른 비리의 예방효과도 내려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이회창감사원장도 최근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사정도 중요하지만 현 단계로선 경제활성화가 우선인데 경직적인 사정으로 경제부처의 소신있는 행정이나 정상적인 금융활동·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져 주목된다.
규정상 국책은행은 감사원에서 곧바로 감사를 나갈 수 있지만 시중은행은 은행감독원을 통하거나 함께 나가야 한다.
이와 관련,은감원 관계자는 『연초 꺾기 등 금융부조리문제가 제기된데 따른 정기검사과정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특별감사에 들어가지는 않았다』면서 『현재 나가있는 정기·수시검사의 결과를 보고 특별검사여부를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따라서 문제가 분명한 은행에 대해서만 빠르면 다음주부터 감사원과 합동으로 특별검사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은감원은 지난달초 은행장회의에서 꺾기·대출커미션과 같은 불건전 금융관행을 시정하라고 강력히 지시했으며 대출을 받은 기업들이 커미션을 강요당했다고 응답한 몇개 은행에 대해 조사를 진행중이다.
은감원은 또 현재 꺾기여부를 중점 대상으로 진행중인 정기·수시검사결과가 나오면 경영진을 문책하는 등의 중징계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한편 김 신탁은행장의 사임은 노조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단순히 일부 기업들과 관련된 「특혜성 대출」외에 그가 금융권 TK(대구·경북)세력의 대부로 통했다는 점에서 정치상황이나 금융권 세력판도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80년 사회정화활동이후 13년만에 다시 사정의 첫 바람이 금융계에서부터 불고 있음은 여전히 우리 금융계에 문제가 적지않음을 입증하는 것이며 동시에 금융자율화가 시급함을 나타내주는 것이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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