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일단관망” 정부방침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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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면대응보다 국제협력 모색/독자정보능력 한계… 미에 「역할」 맡겨/북,주변국과 관계개선 협의 가능성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야기됐던 충격이 가시지않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물밑 대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성명으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한 이후 별도의 적극적인 대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의 NPT탈퇴는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북한과 유엔 안보리의 문제』라며 『우리가 제3자의 입장은 아니지만 IAEA·안보리와 협조하는 것이 1차적인 우리의 대응』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IAEA이사회 등에서 핵문제를 다루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독자적·일방적으로 북한과 협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개최 가능성을 배제했다.
이번 사태는 북한이 IAEA에 대한 의무를 하지 않으려는 데서 발단됐다. 따라서 일단 IAEA가 북한에 대해 특별사찰을 요구하고,NPT탈퇴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을 조성하는데 당사국인 한국이 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관련국들과 긴밀한 협의는 계속하겠지만 적극적으로 표면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한반도에 중대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도 우리 정부가 관망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데는 우리의 독자적인 정보 능력 부족과 국제협조체제의 유지를 위해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사정도 깔려있다. 그동안에도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데 미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서는 다만 관련 국제기구와 주요 우방들과의 정보교환에서 제외돼 민족이익에 배치되는 결정이 나는 것을 막는 정도를 당분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그동안 북한의 핵개발을 의심하면서 이를 확인할 방법을 차분히 추진해왔다. 특히 당사국 동의없이는 사찰이 어려운 IAEA의 사찰을 보완하기 위해 비핵화선언과 남북상호사찰까지 유도했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은 남북상호사찰 협상에서 불시사찰과 군사기지를 사찰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거부,의혹을 증대시켜왔다. 이제 IAEA의 특별사찰마저 거부함으로써 북한의 이런 행동이 핵개발과 관련이 있다는 심증을 굳혀줬다. 그런데 이런 궁지에서 NPT마저 탈퇴함으로써 북한은 국제적 제재를 받을 수도 있는 여론을 스스로 조성한 셈이 됐다. 따라서 미국 등은 이 기회에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완전히 해결할 것인지가 주목된다.
북한이 이런 자충수를 두게 된 배경은 명확히 입증된 것이 없다. 그러나 정부 고위당국자는 네가지 가능성을 들어 이러한 사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첫째는 북한에 공개하지 못할 시설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사찰을 받을 경우 드러날 핵무기 관련 물질이나 플루토늄을 생산한 증거가 나타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극단적인 처방으로 지금의 딜레마를 피하고 시간을 벌자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지난 2월25일 IAEA이사회 결의로 오는 25일까지 북한은 특별사찰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안보리로 넘어가게 돼 있다. 따라서 어차피 안보리로 넘어간다면 극단처방으로 국제사회의 대처에 혼란을 가져오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세번째는 북한 내부의 불안정 때문에 북한주민의 관심을 외부 위기로 돌리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어느 가능성이든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낙관하고 있는 듯하다. 이 고위당국자도 이미 북한이 안보리에 NPT탈퇴서를 보낸 이상 이 문제가 안보리에서 다뤄지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안보리의 경제제재나 군사제재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북한이 NPT를 탈퇴하기까지는 3개월의 여유가 있으며,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이 기간을 최대한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3개월을 북한에 대한 외교적 해결 노력을 기울이는 시한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는 18일이면 팀스피리트훈련도 끝나게 돼 북한이 NPT를 탈퇴하는 「비상사태」도 해소돼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또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구체적인 제재 조치에 앞서 충분히 북한을 설득할 것이란 점이다.
이것은 북한의 마지막 후원자인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명분을 찾기위해서도 필요한 절차다.
다만 미국이 북한과 직접 접촉하는 것은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한다는 것이 한미 양국의 입장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 2월 IAEA이사회에서 특별사찰 결의안을 통과할 때도 『표결이 이루어지면 찬성하기 어렵다』고 말해 기권의사를 밝힌 적도 있다. 또 중국측은 최근의 접촉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임을 확인했다.
결국 중국이 북한을 마지막으로 설득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도 북한이 핵사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중국도 제재조치를 거부할 수 없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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