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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희망 이야기] 결식아동에 반찬배달 '중학생 3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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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형, 같이 가." "야, 빨리 뛰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4시30분이면 서울 풍납동 종합사회복지관은 '반찬배달 삼총사'의 목소리와 발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관내 결식아동 49명과 독거노인에게 반찬과 간식을 배달하는 이들은 이용현(16.풍성중3).광현(14.풍성중1) 형제와 김성현(14.풍납중1)군. 용현이의 배달 자원봉사는 벌써 4년째다. 형 따라 나선 광현이가 3년이 됐고 성현이는 1년이 돼 간다.

어머니 봉사단 아주머니들이 정성들여 만든 3~4일치 반찬과 참치캔.김.카레라이스.요구르트 등 부식을 담은 비닐꾸러미를 최태원(30)사회복지사와 함께 봉고차에 실으면 출동준비 끝. 방학을 맞은 5일 오후 삼총사의 봉사는 계속됐다.

"오늘 동그랑땡 반찬은 맛있겠다. 조금만 먹으면 안될까. 히히."

"지난번처럼 들고 가다 떨어뜨려 비닐봉지를 터뜨리지나 마."

봉고차를 타고 가면서 누구 여자친구가 예쁜지, 누가 게임 '짱'인지 수다를 떨다보면 어느새 차가 멈춘다.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이다.

두손에 꾸러미를 두세 개씩 들고 차에서 내린 삼총사는 李미안(29)사회복지사의 전송을 받으며 배달할 집을 향해 달린다. 오후 6시가 되기 전까지 모든 집에 반찬을 가져다 주어야 배고픈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은 급할 수밖에 없다.

이를 지켜보던 李복지사는 "아이들이 걷고 뛰는 거리가 하루에 15km는 될 거예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거를 수 없는 일이거든요"라며 "매달 초에는 10kg짜리 쌀 한 부대를 같이 배달해 힘들텐데도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요즘 아이들 같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용현 형제가 자원봉사에 나서게 된 것은 부모 때문이다. IMF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어머니 이부훈(43)씨는 아이들에게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이 많다"며 "어려울수록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어릴 적 두 차례 백내장 수술을 받았던 성현이 역시 어머니의 권유로 봉사를 시작했다.

의사를 꿈꾸는 성현이에게 어머니 이향숙(42)씨는 "남의 아픔과 어려움을 알아야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총사들이 배달하다 보면 아는 얼굴을 만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교 친구들이 많지만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지켜줘야 할 '사생활'이기 때문이다.

광현이는 처음 봉사에 나섰다가 "수고한다"며 한 할머니로부터 받은 1천원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엄마한테 자랑했다가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몰라요. 1천원이 그분들에게 얼마나 큰돈인데 봉사한다는 놈이 냉큼 받아왔느냐면서요."

겨울해는 짧았다. 부지런히 반찬을 날랐지만 어느새 거리는 어둑어둑해졌다. 그래도 배달을 마친 삼총사의 발그레한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정형모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 결식아동 도우려면

식사를 거르는 전국의 결식아동은 2003년 6월 현재 1만3천7백92명(보건복지부 집계). 2000년 5월부터 이들을 돕기 위한 '결식아동 급식지원사업'이 국고 보조 사업이 돼 지난해 53억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됐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기초자치단체의 형편에 따라 크게 세가지 형태로 추진하고 있다.

우선 복지관이나 종교단체 등을 통해 직접 급식하는 방법이다. 자원봉사자를 통해 학습지도까지 병행하는 경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둘째는 음식점을 지정해 식권을 나눠주는 것이다. 셋째는 구청이 쌀이나 밑반찬을 사서 전달하는 경우다. 현금을 주지는 않는다.

서울시 보육지원과 이현숙(43)씨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결식아동이 5천3백명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며 "많은 시민이 후원사업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아이들과 1대1 후원을 하고 싶은 일반 시민을 위해 창구를 한국복지재단 서울지부(02-325-2205)로 일원화했다. 서울 이외 지역에서 결식아동을 돕고 싶다면 지자체 아동복지 관련 부서에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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