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아테네] 2. 양궁 윤미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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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지중해의 더운 바닷바람이 불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사선(射線)에 제가 서 있었어요."

'새해 첫날 무슨 꿈을 꾸었느냐'는 물음에 윤미진(21.경희대 스포츠지도학과2)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러면서 "한창 활을 쏘고 있는데 그만 잠이 깨버렸다"며 '끝장'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전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양궁 2관왕(개인.단체전)의 눈에는 요즘 겁도 긴장도 없다. 이제 8월의 아테네에서 2대(代)에 걸쳐 개인전 2관왕에 도전하는 그다.

아테네 올림픽 최고의 금메달 기대주인 그의 여유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 답을 지난 2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그의 모습에서 찾았다. 그날 양궁 대표팀의 오후 훈련은 1시30분쯤 시작됐다. 기자와의 인터뷰가 예정보다 길어져 1시50분에야 사선에 들어선 윤미진. 그는 3시30분쯤 휴식시간이 시작됐지만 20분 더 활을 쏘았다. "20분 늦었으니 당연히 그만큼 더해야죠."

이어 오후 4시30분 휴식시간이 끝나고 가장 먼저 활을 잡은 사람도 윤미진이었다. 남보다 한번 더, 그리고 한발 더 빨리. 윤미진을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의 간판으로 올려놓은 비결이다.

서오석 여자 대표팀 감독은 "미진이는 좌우 시력이 모두 1.5로 좋다. 불암산 등반 달리기에서는 여자 양궁선수 중 1등을 도맡을 정도로 스피드와 지구력도 뛰어나다. 다만 동료보다 좀 떨어지는 파워를 꾸준한 반복 훈련으로 이겨내고 있다"고 말한다.

올림픽을 향한 윤미진의 활시위는 이미 팽팽해져 있다. 그의 하루는 선수촌에서 시작해 선수촌 숙소에서 끝난다.

매일 오전 6시면 일어나 스트레칭과 구보.웨이트 트레이닝.기술훈련으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 9시까지 본격적인 활쏘기.심리상담, 또다시 웨이트 트레이닝 등 훈련에서 훈련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을 계속한다.

지난해 12월 초 선수촌에 입촌한 뒤 경기도 수원의 집에는 한번밖에 다녀오지 못했다. 그래서 1남4녀의 막내인 그에게는 선수촌 룸메이트인 한살 위 박미경(22)이 어려움을 털어놓는 언니다.

윤미진은 짬이 나면 시드니 셀던의 소설책을 읽는다. "재미와 스릴과 추리가 복합돼 승부사에게 교과서나 다름없다"고 한다. 그래서 국제대회 때도 꼭 챙겨간다.

그는 8일부터 시험대에 오른다. 서울 국제 실내양궁대회에서 여자 세계랭킹 2위 나탈리아 발레바(이탈리아) 등과 겨룬다. 3월에는 대표선발전(2차)이 시작된다. 일곱번의 선발전을 거쳐야 비로소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그는 지난해 8월 아테네에서 열렸던 프레올림픽에서 가뿐히 우승했다. 그래서 느낌이 좋다. 하지만 "국가대표에만 선발되면 해볼 만하다. 새해 첫 꿈은 대표 선발"이라고 조심스레 얘기한다.

새해 첫날 태릉선수촌에는 눈이 내렸다. 아직 녹지 않은 사선의 눈을 밟으며 호흡을 고르는 윤미진의 표정이 차분하다.

김종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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