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열흘만의 개각(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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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정권의 조각 열흘만에 개각이라니 기가 막힐 일이다. 건국이후 언제 이런 일이 있었던가.
우리는 김영삼정권의 이번 첫 개각이 임명된지 불과 열흘된 장관을 바꾸는 것이지만 불가피하고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새정부의 도덕성 복원을 생각하면 열흘이란 기간이나,임명권자의 체면이 문제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김 정부가 구차한 변명으로 이런 인사파동을 적당히 때워넘기려 하지 않고 그런대로 신속한 자체조사를 거쳐 개각을 단행하는 것은 더 이상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물론 이번 인사파동은 새정부의 실수다. 이번 일로 김 정부의 도덕성을 잴 수는 없다. 그러나 역대 어느 정권보다 높은 기대감속에 깨끗한 정부와 도덕성을 외쳐온 김 정부에는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이미지나 기대감에 손상이 간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지금 할 일 많은 이 시절에,더욱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는 국정개혁이 이번 일로 지체되거나 추진력이 약화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지나간 열흘의 홍역을 교훈삼아 개각을 계기로 다시 높은 도덕성과 개혁의 사명감으로 왕성한 추진력을 보여주기를 당부한다.
따지고 보면 이번 인사파동은 여러가지 함축을 담고 있다. 우선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으며,우리사회가 요구하는 공직의 도덕성 수준에 관해서도 새삼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여러차례 지적된 것이지만 사전 검증없는 독단적 인사라는 방식은 복잡한 현대국가에서 통할 수 없는 것이며 이른바 「수권태세」라는 것이 뭐냐는 문제도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번 일은 비록 불상사지만 우리사회 공직의 도덕성·적임성을 높이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고 사전검증없는 인사의 위험성을 되풀이하지 않을 교훈을 주었다.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일은 이번에 우리가 우리사회 부패구조의 일단을 새삼 확인한 일이다. 이른바 한국병의 깊이와 넓이를 절실히 느끼게 한 것이다. 장관정도의 요직에 발탁될만한 사회지도층이 알고보니 주민등록의 위장전입으로 땅투기를 하고 상습적 탈세의혹을 낳고 자녀를 편법입학시켰으니 이 나라에 과연 믿을 사람이 누구겠느냐는 탄식이 안나올 수가 없다. 그런 식이 치부·득세를 못하면 바보라는 사고방식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 밑바탕에 깔려있는게 아닌가.
이번 개각으로 사태가 말끔히 끝났다고도 보기 어렵다. 남은 의혹도 없지 않고 언제 어느 구석에서 또 문제가 터질는지 알 수 없다. 김 정부는 이번에 비싸게 지불한 대가로 얻은 교훈을 가볍게 알아서는 안된다. 정부의 개혁작업도 이런 확인된 현실에 바탕을 둬야 할 것이며,정부 스스로의 도덕성관리에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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