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공개 체계적으로 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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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대통령의 선도로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김 대통령에 이어 총리와 부총리·감사원장 등의 재산공개가 잇따르고 있다. 민자당도 자체결의로 곧 소속의원 등의 재산을 공개할 예정이라니 재산공개가 머지않아 전공직 사회로 확산될게 틀림없다.
그러나 최근의 재산공개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신문에는 연일 아무개 10억,아무개 20억 하는 식의 재산공개가 보도되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 이런 보도를 접하면서 우리는 초기의 신선감이나 재산공개의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식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재산공개에 있어 일정한 기준이나 원칙 또는 통일된 형식이 없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인만큼 어떤 사람은 상세하고,어떤 사람은 간략하며,어떤 사람은 시가로 하고,어떤 사람은 공시지가 또는 감정가격으로 한다. 이처럼 통일된 형식도 기준도 없으니 상호비교도 안되고 공신력도 떨어지는 것이다. 부동산투기로 말썽난 박양실보사의 경우 자체평가로는 자기재산이 60억원 정도라고 했지만 실은 4백억원대라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박 장관은 아마 투기말썽이 없었더라면 자기재산을 60억원이라고 공개했을 터이고 국민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있을 수십,수백명 공직자들의 재산공개가 이런식으로 이뤄진다면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우리는 모처럼 시작되는 재산공개가 공직사회의 부패방지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자면 좀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공개할 재산의 종류와 평가 가액의 기준 등을 법규로 정하고 일정한 관청이 등록을 받아 엄격한 검토·실사과정을 거쳐 일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는 개각이 있을 경우 새내각 각료의 재산이 일괄공개 되는걸 익히 보아오지 않았는가. 지금처럼 공직자들이 제각기 제 나름대로 공개하는 방식으로는 검증도,비교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재산공개제의 핵심은 공직 재임기간중 증감상황을 국민이 알도록 한다는 것인데 자발적 공개방식으로는 이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주무관청이 등록을 받아 일괄공개하고 요구가 있으면 일반인의 열람도 가능하게 해야한다.
우리가 알기에도 거부의 공직자는 많다. 이들이 재산공개를 앞두고 전전긍긍할 것은 뻔한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벌써 재산을 남의 이름 또는 가명으로 분산하는 부도덕한 짓을 벌이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재산공개는 해봐야 소용이 없다. 김 정부는 모처럼 재산공개를 단행할 바에야 좀더 본때있게 조직적·체계적으로 실시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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