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술·언론계를 마음껏 비웃은 사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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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동국대 신정아 교수의 학력 위조가 사실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예일대 박사학위가 가짜인 것으로 드러난 데 이어 학사 및 석사학위도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그녀의 이력 모두가 가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사건은 물론 개인의 사기극이다.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학력을 위조해 출세의 발판으로 삼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다. 대학 측이 진상조사를 거쳐 사실로 밝혀지면 업무방해와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한다니 현재로선 결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녀에게 놀아난 우리 학계와 문화예술계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부끄러운 줄 알고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어떻게 가짜 박사학위로 유명 미술관의 스타 큐레이터가 되고, 유수 대학의 교수가 되며, 국제적인 미술 전시회의 총감독이 되는가. 대학의 검증 시스템이 이 정도밖에 안 되고, 우리 미술계의 사람 보는 식견이 이 정도란 말인가.

그녀가 가짜 학위로 조롱하며 갖고 논 것은 비단 학계와 미술계만이 아니다. 그녀는 외국 명문대 졸업장에 약한 우리 사회의 일류병과 천박성을 마음껏 비웃었다. 그녀에게 농락당하긴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많은 기자가 그녀가 뛰어난 재원이라고 상찬하기에 급급했다. 그녀가 기획한 많은 전시회가 훌륭하다고 치켜세웠다. 그녀에게 전시기획을 잘한다며 상을 주기까지 했다. 진짜 상을 받을 만해서 받은 것인지, 아니면 우리 미술계가 그런 정도도 식별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천박한 수준인가.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지 못한 허위의식 때문인가.

이번 사건은 개인의 사기극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그런 사기극이 통한 미술계의 풍토, 이에 동조한 언론계의 비전문성 등에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녀에게 돌을 던짐으로써 끝낼 일이 아니다. 우리의 어쭙잖은 예술주의와 허위의식이 이번 사건의 공범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