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완전범죄시 말라/정규웅(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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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완전범죄」란 본래 추리소설,혹은 탐정소설에서 유래된 용어다. 얼핏 봐서는 불가능한 것같이 보이지만 논리적으로는 완벽하게 가능한 범죄를 일컫는다.
이 용어가 현실속의 범죄수사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범인의 지능이 발달하고 범죄의 수법이 점차 교묘해지면서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자 단서나 물증을 남기지 않고 수사망을 벗어난 사건을 가리켜 완전범죄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수사관열의 가장 중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완전범죄가 과연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완전범죄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보통 「과학의 힘」을 근거로 제시한다.
아무리 교묘한 수법의 범죄라 하더라도 고도로 발달한 과학을 동원하면 해결되지 못할 사건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많은 범죄 해결에 수훈을 세운 법의학자들은 시간적인 문제는 있을는지 몰라도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사건은 있을 수 없다고 단정한다.
완전범죄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한 법의학자의 어떤 살인사건 해결체험이 흥미롭다.
2년전 사장에 의해 독살돼 강물깊으 곳에 수장된 어느 여비서 살인사건이 그것인데,2년이면 시체가 완전 부패돼 그 형체조차 찾을 수 없게 마련이지만 시체에 비누성분의 사랍이 형성됨으로써 범행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사건해결에 무엇보다 전제돼야 할 것은 수사관계자들의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는 강한 집념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건발생 초기에는 강한 집념을 보이다가도 시간이 지체될수록 그 집념은 퇴색해 가는 것이 상례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일부 법의학자들은 완전범죄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수사관계자들 자신이라는 견해를 편 적도 있다.
이른바 미제사건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해결의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사건해결에 대한 수사관계자들의 열의도 차츰차츰 식어져 사건자체를 미궁속에 빠뜨리는 예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일찌감치 사건 해결을 포기하거나 체념하는 것도 미제사건들을 쌓이게 한다는 주장이다.
수사관계자들의 완전범죄 여부에 대한 견해도 가능하다는 쪽과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갈리지만 완전범죄가 가능하다는 견해들이 대개 미제사건들을 완전범죄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같다.
○잊혀지기만 기다리나
엄밀하게 따지자면 미제사건이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범죄」일뿐 완전범죄는 아닌데도 그것을 완전범죄의 범주에 넣고자 하는 까닭은 해결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수사관계자들이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범죄수사능력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것이 수사관들의 크나큰 자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해결된 사건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그 수사능력을 자랑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사건들을 놓고 볼 때도 과연 우리나라의 수사능력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영구미제사건이든,완전범죄든 우리나라에는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건들이 너무 많다.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사건들이 많은 까닭을 단순히 수사관계자들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일일는지 모르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건들 가운데 상당수의 사건들을 「완전범죄」로 치부하고 더이상 수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86년 9월 첫사건이 발생한 이래 10명의 희생자를 낸 화성군 부녀자 연쇄살인사건도,대구의 다섯 어린이 실종사건도,이형호군 유괴살인사건도,공인회계사 살해유괴사건도,고문경찰관 이근안씨 사건도 모두가 시간이 흘러 잊혀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90년 10월13일 소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래 굵직한 미제사건들 가운데 해결의 기미를 보이는 것은 최근 그 한가닥을 드러낸 「용팔이 사건」밖에는 없다. 그나마도 그 배후와 사건의 전모가 속시원하게 밝혀질는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다.
○「용팔이건」만 늦게 윤곽
이 사건이야말로 오래전에 해결될 수 있었음에도 왜 이제서야 희미한 윤곽을 드러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범죄와의 전쟁」이 범죄행위를 가차없이 처단하고 미연에 방지하자는데 그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미제로 남아있는 사건들을 해결하는데도 중요한 목적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게 보면 범죄율이 떨어진 것만으로 성공적인 「범죄와의 전쟁」을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정 완전범죄는 있을 수 없다는 자세로 미제사건해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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