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눈감으면 “물거품”/부정부패 척결(김영삼정부의 과제: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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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윗물맑기」변함 없는 의지가 관건/주변만 잘 다스려도 절반은 성공
김영삼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취임사에서 부정부패 척결에 성역이 없음을 강조하면서 『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합니다. 이제 곧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될 것입니다』고 주먹을 쳐들어 외첬을때 취임식장은 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다.
이날 오후 의원회관에서 만난 여야의원들은 서로 『무섭다,조심합시다』며 수군댔다. 김 대통령은 그 후 첫 국무회의석상과 3·1절행사 등 공사석에서 기회있을 때마다 단호한 의지를 밝혀 정·관계는 물론 국민들도 김 대통령의 사정의지만은 피부로 느끼게 됐다.
그 결과 김 대통령이 개혁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여론조사(중앙일보 2월27일자 조사·71% 지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김 대통령이 부정부패 척결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실천에 옮겨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하느냐에 있다. 국민들은 부정부패 척결을 서슬퍼렇게 외치다가 스스로 부패의 늪에 빠진 3공과 5공,그리고 6공수뇌부의 「기만적 행위」를 잘 알기 때문이다.
○역대정권서 교훈을
5공초 사정기관에 근무한 한 관계자의 얘기.
『신군부가 들어서서 부정부패의 고삐를 바짝 죌때 서울역에는 암표상이 사라졌다. 그러나 82년 이규광의 장영자사건 개입과 83년 명성사건이 터지자 암표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85,86년에는 아예 일부 역무원들조차 공공연히 암표상과 거래했다.』
이­장사건에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처삼촌(이규광)이,명성사건에는 대통령의 장인(이규동)이 직·간접 연루됐거나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주장한 5공 핵심 허화평·허삼수씨가 되레 청와대에서 쫓겨나자 사정의 서슬은 순식간에 꺾이기 시작했다.
허화평의원의 회고­.
『요란하게 수사하다가 위(대통령)에서 그만두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국민들의 불신은 물론이고 사정기관 내부에서도 상부를 믿지않게 된다. 당장 대통령의 기류를 청와대 수석과 장관들이 알게되고 이것이 전공무원들에게 눈치채이는 것은 순식간이다.』
즉 대통령의 개혁의지가 퇴색됐다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 부정부패 척결은 물건너 간다는 얘기다. 한번 예외가 인정되면 다음부터는 국민과 공직자들이 대통령의 의지를 믿지않게 된다.
박정희대통령도 5·16직후 육사8기가 중심이 된 4대 의혹사건을 명쾌하게 수사하지 못함으로써 18년동안의 재임기간중 부정부패 척결에 늘 부담을 안았다. 노태우대통령도 처남 김복동의원·처고종 박철언의원 때문에 끝까지 시달렸으며 막바지에는 사돈기업인 선경에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넘겨주려다 영을 송두리째 잃고 말았다. 대통령의 솔선수범이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로 깨지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김 대통령의 「윗물맑기운동」도 이런 교훈에서 예외일 수 없다.
김 대통령의 말대로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아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정치자금 공개돼야
대통령의 의지와 함께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다. 개혁의 1차적 목표는 제도개혁이며 궁극적으로는 의식개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의기관인 국회와 정당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는 필수적으로 돈 안드는 선거,깨끗한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자금도 공개돼야 한다.
노태우대통령은 지난 88년 각계 지도층 인사들의 조언을 받는 과정에서 정치자금 공개건의에 대해 『지금 공개하면 온나라가 뒤집힌다』고 거절했다. 밝혀지면 정권과 정부가 무너질 문제라면 언제까지라도 감춰놓고 지낼 수는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기업들로부터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받는 관행과 집권당과 의원들에게 수시로 당운영비나 「오리발」을 주는 관례가 존속하는한 정치권 부패척결은 요원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대통령은 정치자금으로 여당의원들을 자주 움직여왔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집권당이 되어야 한다는 여당의 현실적 권력욕구가 번번이 정치개혁을 좌절시킨 것이 우리의 정당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정부패 척결과 깨끗한 정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지금처럼 형성되기도 쉽지않다. 다행히 김 대통령 자신이 개혁에 앞장서 40년 정치생활을 마무리 하겠다는 각오를 갖고있다.
김 대통령은 앞으로 이를 수사차원에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게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에 반하는 행위가 주변에서 나타날때 그야말로 「읍참마속」의 행위로 다스리면 부정부패의 절반은 근절될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믿고있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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