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민혁명' 위한 당선운동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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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7대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 일부에서 당선운동을 하겠다고 나섰다. 가칭 '2004년 총선 물갈이 국민주권연대'를 결성, 총선을 통해 새로운 정치주체를 형성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국민후보를 선정.지지하는 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일 것이라고도 한다. 시민단체가 총선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이들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특정 정파를 돕기 위한 불법선거운동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지 우려를 낳는다.

우선 이들이 표방하는 '정치권의 대대적 물갈이'슬로건이 "시민혁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지난해 12월 19일)과 맥을 같이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더구나 盧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고 싶다"며 대통령의 선거개입에 대한 유권해석을 선관위에 요청할 뜻까지 밝힌 상태다. 총선에 명운을 걸고 있는 대통령을 외곽에서 지원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시민단체는 준법운동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게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현행 선거법은 후보자.정당, 선거사무장 등 선거관계자와 공식 선거운동원이 아닌 사람의 선거운동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연설회 개최나 유인물의 제작.배포 및 표지판 설치 등의 핵심 선거운동은 할 수 없다. 특정후보의 당락을 직접 목적으로 하는 당선운동을 하면서 과연 이렇게 엄격한 법을 어기지 않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재판을 통해 불법선거운동으로 규정된 2000년 16대 총선 당시 낙선운동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자칫 가뜩이나 혼란스러울 총선 정국을 더욱 부채질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운동주체들은 신중하게 따져보길 바란다.

만약 운동 주체들이 대의와 공익을 내세우면서 내막적으로는 특정 정파를 돕는 선거운동을 하려는 생각이라면 차라리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하든지 공식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하는 게 옳다. 이것도 싫다면 정당관계자가 아닌 사람의 선거운동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현행 선거법을 개정하는 운동을 벌이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