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야스쿠니 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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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야스쿠니(靖國)는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이 단어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곳은 전후 한.중.일 간 자존심과 갈등의 치열한 상징적인 전쟁터다.

일본은 이곳에 호국영웅들이 묻혀 있기 때문에 총리의 참배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등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들의 무덤에 일본 총리가 참배한다는 것은 인류평화의 정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한다.

역사적 사실로 보면 양쪽의 주장은 모두 맞다. 야스쿠니 신사가 건립된 것은 1869년이다. 일본 왕실이 메이지유신을 추진하면서 막부(幕府)군과의 싸움에서 숨진 영혼을 '호국의 신'으로 제사지내기 위해 건립했다. 건립 당시엔 도쿄 쇼콘샤(招魂社)였으나 1879년 야스쿠니(靖國)로 이름이 바뀌었다.

야스쿠니가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전몰자를 호국의 영령으로 제사하고, 일왕이 직접 참배하는 특별대우를 해주면서 일본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면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군 총사령부는 야스쿠니를 종교시설로 변화시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은 1947년의 정교분리를 언급한 신헌법에서 야스쿠니가 종교시설이자 전몰자 추도시설임을 명시했고, 60년대 말부터는 보수파들이 나서 국가관리 사원화 작업에 돌입했다. 78년에는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의 위패를 합사했고, 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전후 최초로 총리로서 참배했다. 또 2001년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참배했다. 2001년 현재 야스쿠니에는 총 2백46만여명의 위패만이 아니라 가미카제(神風)대원들의 동상, '야마토'호의 대형 포탄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 유물과 전범의 동상들이 수없이 전시돼 있다.

지난 1일 고이즈미는 또 다시 야스쿠니를 참배하면서 '평화의 마음으로' 참배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 자가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의 지도자고, 이런 분위기가 일본에서 용인된다면 주변국이 일본을 친구로 느낄 수 있을까. 만약 독일 총리가 히틀러 등 제2차 세계대전 전범들의 묘지를 매년 참배하면서 평화의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면 세계 여론이 이를 가만히 둘 수 있을까.

김석환 논설위원